조선 후기 대학자였던 윤증(명재ㆍ1629 ~1714년)은 임금이 내리는 정승 벼슬을 번번이 거절했다. 숙종의 거듭된 강권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송시열(우암)의 세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고, 서인과 남인의 원한이 해소되지 않으면 안 되고, 친인척의 발호를 막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내 역량으로는 세가지 벽을 넘을 수 없으므로 벼슬에 나갈 수 없다.”명종 때 인물 조식(남명ㆍ1501~1572년)은 임금이 대학자 이황(퇴계)까지 보내 벼슬을 종용했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단성현(경남 산청) 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