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이 경상도의 오른쪽 바다라 할 수 있는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날이 1597년 7월 16일입니다. 기세등등해진 왜군이 서쪽으로 진격해 오다가 명량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판옥선을 만났습니다. 칠천량해전 두달 후인 9월 16일입니다. 그 결과는 전쟁의 판도를 결정짓는 치명적인 왜군의 패배였습니다.이날 이순신이 지휘한 13척의 배는 경상우수사 배설이 빼돌린 배였습니다.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하던 그때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배설이 지휘하던 배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순신은 배설의 배로 기세등등하던 왜군에
이순신 장군의 발길 따라 전국을 누볐다. 그가 태어난 서울 충무로에서 세상을 떠난 남해 관음포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긴 여정을 시작한 건 500년 시간을 뛰어넘어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받은 ‘위안’ 때문이었다. 「이순신 여행」 저자 장정호의 여정을 따라가봤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소통에 능한 리더”라고 잘라 말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순신 여행」 저자 장정호를 만났다. ✚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몇해 전 사업을 하다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일은 잘 풀리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뜻이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퇴계 이황과 성웅으로 불리는 이순신 장군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때론 임금의 명령이라도 대의에 어긋나면 단호하게 거절해 모진 수난을 받기도 했다.퇴계는 조정에서 불러도 병을 이유로 사양하거나 부득이 벼슬을 받더라도 곧바로 사직했다. 명종은 화공을 퇴계 고향으로 보내 그린 풍경화로 병풍을 만들어 옆에 두고 볼 정도로 퇴계를 흠모했다. 명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선조는 퇴계를 예조판서로 임명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정진했다.‘매불매향梅不賣香’이란 말이 있다. 매화는 춥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