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우리에게 필요한 ‘거절의 기술’
[윤영걸의 有口有言] 우리에게 필요한 ‘거절의 기술’
  • 윤영걸 편집인
  • 호수 285
  • 승인 2018.04.27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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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겸손이자 자기절제
▲ 거절은 탐욕에 대한 자기 절제다. 하지만 단호한 거절은 또 다른 부메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퇴계 이황과 성웅으로 불리는 이순신 장군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때론 임금의 명령이라도 대의에 어긋나면 단호하게 거절해 모진 수난을 받기도 했다.

퇴계는 조정에서 불러도 병을 이유로 사양하거나 부득이 벼슬을 받더라도 곧바로 사직했다. 명종은 화공을 퇴계 고향으로 보내 그린 풍경화로 병풍을 만들어 옆에 두고 볼 정도로 퇴계를 흠모했다. 명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선조는 퇴계를 예조판서로 임명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정진했다.

‘매불매향梅不賣香’이란 말이 있다.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조 있는 선비정신의 표상이다. 퇴계 이황은 눈바람 속에서 피는 매화를 좋아해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부르고 매화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다. 세상 떠난 날 아침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매화에 물을 주라”였다.

23전 23승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비결은 최적의 전략과 전술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전투에 나선 데 있다.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왕의 출격명령도 거절해 선조의 노여움을 샀다. 이순신 대신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은 무모하게 출전해 칠천량해전에서 처절하게 패배해 삼도 수군은 일시에 무너졌다. 백의종군으로 돌아온 이순신은 남은 배 12척과 빈약한 병력으로 명량에서 무려 133척의 일본군을 대파했다.

갖은 구설로 임명된 지 19일 만에 낙마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분수도 모르고 중책의 관직을 덥석 삼켰으니 가소롭기까지 하다. 몇몇 재벌그룹 회장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때 뇌물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몇몇 재벌그룹 회장들은 아무리 청와대의 뜻이라고 해도 당연히 거절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이사회 결의와 같은 기업내부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총수들은 주주들의 재산인 회사 공금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마구 퍼줬다.

인간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부탁과 거절인 것 같다. 돈 잘 빌려주는 사람 치고 부자 된 사람 없다. 돈을 주거나 빌려주는 행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개인 간 돈거래에서 맺고 끊지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오죽했으면 “보증서지 말라”는 가훈까지 등장했을까. 끝낼 때 끝내야 하는데, 거절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다 마침내 서로가 불행해지는 사례가 너무 많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책을 통해 “사람관계는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며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야 통풍이 될 공간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고 속삭이듯 말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를 4가지로 분류했다. ‘밀접한 거리’는 0~46㎝로, 엄마와 아기, 사랑하는 연인,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의 간격으로 서로 체온을 느끼고 상대방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개인적인 거리’는 46㎝~1.2m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사이의 거리다. ‘사회적 거리’는 1.2~3.6m로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관계이고, ‘공적인 거리’는 3.6~7.5m로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 공연장에서 공연자와 관객의 거리를 말한다. 요즘 들불처럼 일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4가지 거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거절은 겸손이고 탐욕에 대한 자기절제다. 거절은 매몰찬 게 아니라 자신의 주도권을 스스로 갖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다. 거절할 수 있다는 건 자신감의 발로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때론 재앙을 부른다.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거절당하는 사람의 기분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자칫 거절을 당한 이의 상처와 분노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먼저 거절하려면 표정이나 말투는 부드럽게 하되,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뒷담화는 금물이다. 부드럽고 강한 어조로 맞서야 한다. 또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 문자나 카톡에 의존하다가는 본뜻이 왜곡되거나 아예 전달조차 되지 않아 낭패를 부르기도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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