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선 KAIST 소프트웨어대학원 교수

여기 50대의 대학교수가 있다. 선한 인상과 수려한 말솜씨가 전형적인 학자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보통사람이 아니다. 20년간 그가 설립한 벤처기업은 총 6개.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게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 황병선 교수는 "사업을 1년 해보고 안 되면 관두겠다는 호기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1980년대 후반. 인천의 한 고등학교 기술교사가 학생에게 제안했다. “컴퓨터로 성적 처리하는 걸 도와주면 방과 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학생의 귀가 번쩍 뜨였다. 이후 시험이 끝날 때마다 교사의 업무를 도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졌다. 황병선 KAIST 소프트웨어대학원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게임을 좋아해 게임개발자를 꿈꿨다”고 말했다. 운명이었는지 그는 1994년 삼성전자 게임사업팀에 입사했다.

꿈에 그리던 개발자가 됐지만 외환위기(I MF)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회사를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학 후배들과 함께 ‘마인즈’라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이름도 생소한 벤처기업은 한글 프로그램으로 크게 성공한 한글과컴퓨터의 파트너가 됐다. 마인즈는 한컴타자교실ㆍ한컴홈셀 등을 개발했다.

문제는 영업이었다. 마케팅과 홍보 부족으로 제품이 팔리지 않았고, 회사 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기획자였지만, 영업은 서투른 CEO였던 것이었다. 사업은 3년 되던 해에 고비를 맞았다. 회사를 떠나면서 ‘사업을 하려면 영업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심기일전心機一轉.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솔루션, 네트워크, 콘텐트 공유서비스,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거나 융합한 각각의 5개 회사를 차렸다. 당시 벤처기업 붐이 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서비스들은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중요한 걸 얻었다. 자신에게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1999년 론칭한 콘텐트공유서비스 ‘신밧드’는 2000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음악서비스 소리바다와 유사했고, 2000년 선보인 ‘셀프TV’는 현재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을 주도하는 유튜브와 흡사한 동영상 서비스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 그의 눈은 정확했던 거다.

 
그래도 사업 실패의 대가는 혹독했다. 회사를 정리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파산신고ㆍ회생ㆍ면책ㆍ소송 등 법적인 모든 절차를 겪었다. 젊어서 한 고생 덕분이었을까. 그의 손에 남은 건 없었지만, 눈만은 예리해졌다.그 후 황 교수는 2011년 학교(당시 청강문화산업대 스마트폰전공 교수)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사업이 아니라 연구를 택한 것이다. 황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한가지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잡는 게 탁월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 교수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최근 그의 행보다. 개발자 오프라인 모임 플랫폼전문가그룹의 대표위원인 황 교수는 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벤처기업 11개를 투자했고, 그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프렌즈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은 그의 말은 청년 CEO의 심금을 울린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누구도 창업하지 않는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이겨내라는 얘기다. 7년에 걸쳐 극복한 이의 말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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