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퍼링 리스크, 한국엔 없다지만…

▲ 글로벌 유동성 코드는 ‘경기방향성’과 ‘정책기대’에 맞춰져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3년 글로벌 유동성은 미국ㆍ일본ㆍ유로존 등 선진국에 집중됐다. 선진국의 ‘경기방향성’이 긍정적인 흐름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머징 마켓은 달랐다. 글로벌 유동성은 이머징 마켓에 신뢰를 주지 않았다. 한국 증시가 부진의 늪에 빠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4년 글로벌 유동성은 어디로 쏠릴까. 아쉽게도 한국은 매력이 부족하다.

2013년 글로벌 증시는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수익률 차별화 현상이 뚜렷했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적극적 통화정책과 제로금리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은 미국ㆍ유로존ㆍ일본 등 주요국의 증시로 급격히 유입됐고 선진국 증시를 끌어올렸다. 반면 이머징 마켓은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지난해 국내 증시가 선진국과 강한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겪은 이유다. 올해 국내증시의 지수레벨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선 반드시 글로벌 유동자금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유동성의 코드는 ‘경기의 방향성’과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한 믿음’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해 증시 상승률 상위에 속한 국가 중 이 수익률을 정당화할 만큼 경기가 회복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경기회복에 대한 방향성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 방향성이 가장 뚜렷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부동산 경기회복을 시작으로 다른 선행지표들이 6개월 이상 반등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미국 경기의 방향성은 이제 회복국면을 지나 경기확장국면으로 진입할 공산이 크다.

일본과 유로존의 경기 방향성은 ‘턴어라운드’다. 기업의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만성적자에 시달리다 흑자전환을 꾀하고 있는 국면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률의 레벨은 낮은 편이지만 역성장 국면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성장국면에 접어든 것은 의미가 있다. 이 방향성 자체가 수익률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글로벌 캐리자금(저금리로 조달된 자금)에 매력적으로 부각됐을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의 경기 방향성이 회복을 나타내는 배경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전폭적인 통화정책 지원이 있었다. 이 정책에 대한 시장의 믿음은 해당국의 금융자산 수익률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해 엔화는 달러 대비 21.4% 절하됐고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무려 56.7%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투기자금의 ‘엔화매도와 닛케이225 매수’ 현상이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발언을 계기로 유로존 재정위기 우려를 잠재우는데 성공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금융시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유로존 재정위기를 불러일으킨 P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ㆍ스페인) 국가의 증시 수익률이 두드러졌다는 점이 ECB 정책카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상당히 높게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경기방향성 잘 담긴 ‘유동성 코드’

2014년에도 남유럽 국가의 글로벌 캐리자금 유입세는 뜨거울 전망이다. 구제금융국가이던 아일랜드가 37억5000만 유로의 10년물 국채를 입찰하는데 무려 140억 유로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낙찰 금리는 3.54%에 불과했다. 포르투갈 역시 32억5000만 유로 규모의 5년물 국채발행 시장에서 100억 유로의 자금을 불러 모았다. 이런 현상은 2년물 국채금리의 하락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갈 2년물 국채금리는 올해에만 무려 1.3%가량 떨어졌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금리도 각각 0.50%와 0.25%씩 하락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캐리자금의 특징은 단기간에 벌떼같이 몰려들어 자산가격을 수직상승시켜 놓는다는 점과 장기간에 형성된 기술적인 저항선을 일방적으로 뚫고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3.0%선을 순식간에 뚫고 올라갈 기세로 치솟았던 미국채 10년물의 되돌림이나 단기간에 105엔 수준까지 상승한 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속도 둔화세는 글로벌 유동자금이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글로벌 유동자금의 특징을 감안할 때 포르투갈을 제외한 남유럽 2년물 국채가격의 단기적인 상승여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남유럽 국가 대부분의 국채 수익률(2년)과 독일 국채 수익률(2년) 사이의 금리차가 유럽재정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 국채와 남유럽 국채간의 10년물 금리차이가 여전히 재정위기 전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유동성의 남유럽 채권시장 매수세는 단기적으로 10년물 시장에 좀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 금융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이머징 금융시장에서는 글로벌 유동자금의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유출세가 두드러진다. 올해도 중국의 정책초점은 긴축과 구조개혁에 맞춰져 있어 이런 흐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행히 ‘Good Emerging Market’에 속한 한국과 대만증시에서는 아직까지 급격한 자금유출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미지근한 국내 경기상황을 감안하면 국내 증시가 글로벌 유동자금의 선택을 받을 만한 이유가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국내 증시, 미국 소비회복에 달려

결국 국내 증시가 외국인을 유혹하기 위해선 글로벌 유동자금의 코드가 ‘경기방향성’에서 ‘경기’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계기는 미국 근로자의 임금상승이 동반된 본격적인 소비회복 여부다. 미국 소비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국면에선 수출비중이 높은 국내기업의 실적개선 매력이 부각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미국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과 임금수준의 개선속도는 여전히 빠르지 않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자산효과와 고용창출의 혜택이 특정 집단에만 한정되고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본격적인 소비회복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유동성이 신흥시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윤서 KTB투자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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