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차 협력금제 ‘빛과 그림자’

▲ [사진=더스쿠프 포토]
정부가 내년 1월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실시한다. 친환경ㆍ소형차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방향’은 맞지만 국내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국산차의 강점인 ‘가격경쟁력’을 잃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한 규제가 국산차를 역차별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정부의 ‘저탄소차 협력금제’로 떠들썩하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내년 1월 시행되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주요 차량 대부분이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치를 초과해 부담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입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조금을 받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국산차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 [더스쿠프 그래픽]
저탄소차 협력금제의 도입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프랑스가 시행한 보너스-맬러스(Bonus-Malus) 제도를 참고해 2009년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저탄소차 협력금제 도입을 결정했다. 정부는 2010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시 관련 조항을 포함해 제도 시행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2013년 4월에는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허용기준 설정, 저탄소차 협력금 부과를 골자로 한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완성차업계의 반발에 제도가 미뤄졌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프랑스의 보너스-맬러스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보조금-중립-부담금’ 3단계 구간으로 설정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보다 적으면 보조금을 받고, 반대의 경우에는 부담금을 내야 한다. 중립은 보조금을 받지도, 부담금을 내지도 않는 구간이다. 정부는 이 제도의 효과를 이렇게 내다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대형 차량 위주의 국내 자동차 시장의 DNA가 ‘저탄소차’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수송부문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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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의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 기준안에 따르면(2013년 10월 기준), 주행거리 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00g 이하인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50만~7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26g 이상인 경우에는 25만~700만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중립구간은 101~125g이다. 하지만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수입차는 이익을 보고, 국산차는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수입차 대표 모델인 BMW 520d(판매가 6200만~6630만원)를 보자. 이 차량은 시장에서 현대차 제네시스(3.3 RWD 모델ㆍ4660만~5260만원)와 경쟁한다. 내년 1월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BMW 520d는 중립구간(이산화탄소 배출량 101~125g)에 포함돼 보조금을 받지도 부담금을 내지도 않는다. 가격 변동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89g인 제네시스는 500만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결국 제네시스의 판매가는 4660만~5260만원에서 5160만~5760만원으로 올라간다. 제네시스의 가격경쟁력이 한순간에 BMW 520d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다.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수입차가 국산차에 비해 보조금 또는 중립구간에 더 많이 포진된다. 수입차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 차량에 비해 20~30% 적은 디젤ㆍ하이브리드 차량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서다. 수입차는 지난해 국내에서 총 15만6497대를 팔았는데, 이 중 디젤 차량 비중은 62%에 달한다. 언급한 BMW 520d와 같이 중립구간에 속한 수입차는 폭스바겐 골프 2.0 TD, 벤츠 E220 CDI, 아우디 A6 2.0 TDI 등이 있다. BMW 320d ED는 5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높은 일본차의 경우에는 도요타 프리우스,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렉서스 CT200h가 각각 300만원, 100만원, 5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 [더스쿠프 그래픽]
그렇다면 국산차의 대표 모델은 저탄소차 협력금제 도입 후 가격 변화가 있을까.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차를 보면, 아반떼는 중립구간에 속하고, 쏘나타는 부담금 75만원, 그랜저는 부담금 100만원, 에쿠스는 부담금 700만원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통해 친환경ㆍ소형차 판매를 유도하는 방향성은 맞지만 국내 시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산차와 수입차가 경쟁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클린 디젤과 하이브리드 등 엔진 기술 격차가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국산차가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국내 자동차 산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입차에 유리, 형평성 고려했나

환경부는 이 사안을 놓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산자부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국내 경제를 이끌어 가는 핵심 산업이고,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규제와 동시에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환경부는 지속성장을 위해선 세계적인 흐름인 자동차 관련 환경 규제를 강화해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국내 자동차 시장이 정부의 ‘저탄소차 협력금제’로 떠들썩하다. [사진=뉴시스]
현재 환경부, 산자부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 기준을 논의하고 있다. 환경부는 한발 물러나 국내 자동차 산업에 맞춰 중립구간의 폭을 넓히고, 부담금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환경부는 4월 안으로 시행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저탄소차 협력금제와 관련 기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더한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 근거해 2012년부터 세계 수준의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산자부는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을 통해 현재 국내 자동차 연비ㆍ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2015년까지 총 판매 차량의 평균연비 17㎞/L 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140g 중 완성차업체가 택일하는 방식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평균 연비 17㎞/L의 경우 2015년 미국 연비 규제 예정치인 16.6㎞/L보다 높은 기준이다.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환경 규제가 강한 유럽연합(EU)의 현행 승용차 배출량 규제인 130g과 유사한 수준이다. 완성차업체 한 관계자는 “총 판매 차량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차량별로 규제하는 저탄소차 협력금제까지 시행되면 국내 자동차와 부품 산업계가 중복규제를 받는 것”이라며 “그만큼 부담도 2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환경 규제 vs 車산업 육성

부담금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부담금은 완성차 업체가 내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지불해야 한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소비자가 낸 부담금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량을 사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구조다. 물론 차량 가격이 올라 수요가 줄면 업체 스스로 가격을 낮춰 어느 정도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하지만 부담금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익명을 원한 한 자동차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소비자다.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키운다고 나섰는데 왜 그 값을 소비자가 물어야 하나. 또 완성차업체가 판매가 잘 안된다고 차 값을 내린다고 가정해보자. 부품업체는 어떻게 될까. 부품가격 인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는 “환경부가 자동차 업체가 기술개발을 통해 강화된 환경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국내 완성차업체의 실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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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일침이다. 2012년 기준 국내 5개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R&D 비용은 5조원가량에 이른다. 현대차와 기아차 3조원, 한국GMㆍ르노삼성ㆍ쌍용차 3사가 1조원, 국내 부품업체가 1조원이다.

이 중 해외에 매각된 3사는 허수虛數가 많고, 부품업체는 50%가량이 정부 지원인데 정작 정부가 R&D비용을 줄이고 있다. 현대차도 R&D 투자비용을 큰 폭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회사의 2013년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1.5% 줄었다. R&D 비용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수익성이 계속해서 악화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해외기업은 R&D 규모부터 차이가 난다. 2012년 폭스바겐 한개 그룹만 11조원을 R&D 비용으로 쏟아 부었다. 도요타는 올해 1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술 개발을 통해 수입차를 따라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가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이런 국내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정책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시장서 일본차 강세 전망

결론적으로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국내 완성차업체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차는 판매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수입차는 1000여종의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언제든 국내 상황에 맞게 다양한 차종을 들여올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는 모델이 한정돼 있다. 특히 일본차의 부활이 예상된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BMWㆍ벤츠 등 독일차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으로 독일차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ㆍ소형차에 강점을 지닌 일본차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보조금과 동시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인해 일본차에 부과되는 관세까지 인하되면 차량 가격이 대폭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100만원에 팔리는 경차가 국내에 수입되면 약 900만원에 판매된다는 것이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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