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자동차 부품업체 위상

▲ 탄탄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간 힘의 균형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완성차업체가 부품업체의 협조 없이는 품질 확보와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특히 탄탄한 기술력을 지닌 부품업체에 완성차업체가 의존하는 형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을乙이 갑 甲을 쥐락펴락한다는 얘기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힘이 커지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부품업체에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제너럴모터스(GM)가 부품공급 약관상의 ‘실수’를 인정하고 일부 조항을 철회한 것이다. 부품업체들이 “8개월 전 개정된 약관을 보면 리콜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의 책임범위가 확대됐다”며 GM 측에 거세게 항의한 결과였다. 업계에선 자동차 부품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로 받아들여진다.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부품사의 협조와 기술 없이는 품질확보와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부품업체의 규모도 갈수록 커지면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2002~2012년 글로벌 ‘톱(Top) 10’ 완성차 업체의 합산 매출이 43% 증가하는 동안 톱 10 부품업체의 매출은 79% 급증했다.

매출액 기준 글로벌 상위 10개 부품업체를 보면(2012년 기준), 1위가 로버트 보쉬(독일)이고, 2위는 덴소(일본), 3위 콘티넨탈(독일), 4위 마그나 인터내셔널(캐나다), 5위 아이신 세이키(일본), 6위 존슨 컨트롤(미국), 7위 포레시아(프랑스), 8위 현대모비스(한국), 9위 ZF 프리드리히샤펜(독일), 10위는 야자키(일본)이다.

부품업체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는 자동차 산업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어서다. 자동차 전장화율은 40%에 달하고, 모듈화를 통한 원가절감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의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해졌다. 반면 부품업체는 마케팅 부담이 없고, R&D에만 집중할 수 있어 기술 선도 측면에서 유리하다. 지난 10년간 부품업체들은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완성차 업체보다 높았다.

R&D 비율, 완성차 4.1% vs 부품사 5.5%

이는 완성차업체가 더 이상 차량 내부에 대해 100% 통제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 부품의 경우, 소수 부품업체가 시장과 기술을 장악해 완성차 업체가 이들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비향상과 맞물려 중요도가 큰 터보차저(엔진보조장치)와 가솔린 직분사 인젝터의 경우 하니웰과 보쉬 등 소수의 업체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 자동, 수동변속기의 미래라 불리는 무단변속기(CVT)와 변속기(DCT)도 보쉬와 루크 등 일부 부품업체에 대해 완성차 업체의 의존도가 높다. 부품사의 강화된 위상은 수익성 개선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상위 10개 부품업체의 2014년 예상 영업이익률은 7.7%(블룸버그 컨센서스 기준)로 예상된다. 지난 10년 이래 최고 실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부품업체의 위상이 강화된 건 아니다. 전문분야의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완성차업체에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60대 부품사를 보면, 저마다 확고한 전문분야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종합부품업체로 분류할 수 있는 1~5위 회사들도 결국 전문부품업체들의 결합체다. 전문분야가 없으면 글로벌 부품사 반열에 오르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전문분야 중에서도 연비 관련 분야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완성차 입장에선 새시를 생산하는 부품업체 중에서 경량화 기술을 보유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공조도 공기정화능력에 그치지 않고 엔진의 부담을 덜어 주는 기술까지 지닌 회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내장과 외장재 등 심미적인 분야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추세다.

실제로 ZF 프리드리히샤펜, 포레시아 등 변속기와 공조업체는 매출액 증가로 글로벌 순위가 오른 반면 ‘리어’ 같은 자동차 인테리어 관련 업체는 톱 10에서 밀려났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연비를 결정짓는 엔진과 변속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8.1%로 전체 평균 6.1%를 상회했다. 반면 내장 전문업체의 영업이익률은 5.8%, 차체 전문업체는 4.2%를 기록했다.

강화된 위상으로 수익성 상승

그렇다면 자동차 자동차 부품업체가 어떻게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R&D 투자를 통한 자체 기술력 확보다. 글로벌 부품업체는 완성차 대비 높은 R&D 투자 비중을 통해 기술을 통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톱 10 완성차업체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과 부품업체 톱 10의 투자 비중을 비교하면(2012년 기준), 4.1% 대 5.5%로 부품업체가 1.4%포인트 높다.

 
전문성 획득은 R&D를 통한 정공법도 있지만 인수합병(M&A)을 통해 기간을 단축하는 방법도 있다. M&A는 전문성 강화보다는 전문범위 확대를 통해 종합 부품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략으로 쓰일 때가 많다. 독일 콘티넨탈이 좋은 예다. 콘티넨탈은 처음 타이어 분야에 한정된 M&A를 통해 타이어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콘티넨탈은 1990년 후반부터 자동차부품업체를 꾸준히 인수하며 10년 만에 세계 4위의 종합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한국의 부품업체는 그동안 기업 문화의 특성상 M&A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M&A가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생존전략이 될 전망이다.

다른 부품사와의 합작을 통한 기술력 확보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상호 상호 ‘윈-윈(Win-Win)’ 전략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M&A에 비해 비교적 편한 방법이다. 한국의 부품 업체 중에서는 만도가 활발하게 합작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만도의 기술 수준이 높아 서로 이해관계가 쉽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만도는 이를 통해 모터ㆍ센서ㆍ파워트레인 기술을 기존 전문분야인 새시에 응용함으로써 선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jinwoo.kim@truefrie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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