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가 만난 프랜차이즈 CEO | 강계성 수상한포차 대표

실내포장마차 난립시대다.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수많은 개인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실내포장마차다. 그 가운데 최근 2~3년 동안 ‘수상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실내포장마차 브랜드가 있다. 2011년 론칭한 수상한포차인데, 전문요릿집 빰치는 메뉴가 장점이다.

▲ 강계성 대표는 "수상한포차는 예비창업자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론칭했다"고 말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포장마차가 등장한 시기는 해방 후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1950년대다. 광목천으로 대충 포장한 마차에 참새구이 등 간단한 안주와 소주를 팔기 시작한 게 시초다. 그럼 포장마차란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미국의 사각형 대형마차, 또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포장마차 야타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유래야 어떻든 당시 포장마차는 고된 노동에 지친 서민에게 가벼운 주머니로도 서글픔과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부가 노점상을 일제히 단속하면서 잠시 자취를 감췄다. 이때 등장한 것이 포장마차의 변형인 실내포장마차다.

현재 실내포차 브랜드는 30여개가 넘는다. 그중 특화된 경쟁력으로 전국에 170개 이상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수상한포차가 눈에 띄는 브랜드다. 수상한포차의 성공요인은 정통 포장마차를 표방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잃지 않는 콘셉트를 내세운 점이다. 독특한 콘셉트, 탄탄한 메뉴라인이 경쟁요소다. 강계성 수상한포차 대표는 “옛 포장마차 운치와 주요 포인트는 살리되, 깔끔하고 현대적 분위기를 갖는 절충방식을 택했다”며 “모든 메뉴의 메인 요리화를 통해 전문 음식점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수상한포차를 론칭한 시기는 2011년 8월이다. 2000년 주점창업 시장에 발을 디딘 지 11년 만에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20대 후반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기도 하남시에 주점을 오픈했다. 권리금 없이 가정집을 개조한 매장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맛을 잘 평가하는 편이에요. 전국에 맛있다는 음식점을 돌아다녔고, 잘 되는 주점이 있다면 벤치마킹도 했어요.” 오픈한 매장은 연일 대박을 쳤고, 2년 가량 운영하다 하겠다는 이에게 매장을 넘겼다. 거기서 얻은 종잣돈을 밑천으로 서울 면목동에 또 다른 주점을 재오픈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0년까지 오픈한 매장만 6~7개. 강 대표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과 성공한 점을 꼼꼼하게 기록해, 다음 매장을 열 때 적용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맞추기 위한 실험도 매장을 오픈할 때마다 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로서의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간 셈이다. 2010년 강 대표는 모든 매장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브랜드 네이밍. 수상한포차라는 이름을 포함해 5~6개를 20~30대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수상한포차가 70~80%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 10개월간의 메뉴 개발과 인테리어, 브랜드 콘셉트를 결정한 후 2011년 8월 서울 목동에 직영점을 오픈했다. 정통을 표방한 수상한포차의 첫 출발이었다.

“국적 불명의 퓨전메뉴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메뉴의 정통성을 강조해 맛에 집중했죠. 섞거나 요령을 부리지 않고 메뉴별 전문점에서 맛 볼 수 있는 진안주 위주로 정면승부했어요.” 정통에 대한 강 대표의 고집은 수상한포차의 요리가 전문요릿집에 견줘도 전혀 뒤질 게 없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수상한포차를 대한민국를 대표하는 주점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가 조금씩 무르익고 있다.
이호 더스쿠프 기자 rombo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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