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영 K그룹 회장의 ‘실리콘밸리 환상론’

실리콘밸리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겉모습에만 열광하는 건 아닐까.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브레인파워가 모여 있는 K그룹의 윤종영 회장을 만나봤다

▲ 윤종영 회장은 "한국에 형성된 실리콘밸리의 이미지는 왜곡 됐다"고 꼬집었다.
윤종영 K그룹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크고 작은 기업에서 정보기술(IT) 전문가로 활동했다. K그룹은 실리콘밸리의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 Area)을 중심으로 테크놀로지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2007년 3월 20여명이 모여 시작한 K그룹의 회원수는 2500명이 넘는다. 윤 회장은 페이스북을 포함해 크고 작은 기업에 IT컨설턴트로 16년간 일했다. 야후에서도 1년 반가량 정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런 그가 최근 K그룹 회원들과 한국을 찾았다.

✚ 실리콘밸리와 관련해 다양한 질문을 받았을 것 같다. 막연한 환상도 있었을 거 같다.
“실리콘밸리를 참 모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환상보다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였다. 실리콘밸리는 멋진 곳이 아닌 연구개발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는 그런 곳이다.”

✚ 사실 실리콘밸리 하면 ‘구글’이나 ‘애플’ 같은 대기업부터 떠오른다.
“실리콘밸리에는 구글, 야후뿐만 아니라 수천개 회사가 몰려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웹서비스 등 IT 관련 회사가 엄청나게 몰려 있다. 소프트웨어가 지금은 강세지만 하드웨어 회사도 엄청나게 많다. 인텔 같은 반도체 회사뿐만 아니라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 회사도 있다. 바이오 관련 회사도 있고 테슬라 같은 전기자동차 회사도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중소기업도 많다. 그런데 한국에선 잘 알려진 대기업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 맞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의 성공 스토리만 접하다 보니 실리콘밸리에 환상이 생긴 것도 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성공 CEO’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는 유독 자기계발서가 많은 거 같다. 롤모델도 너무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롤모델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내가 일하는 곳의 동료이고 선임이다. 본인이 속해 있는 분야에서 앞서 있는 사람이 롤모델이다. 자신의 롤모델이 스티브 잡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실리콘밸리를 진짜 이끄는 사람들은 이곳의 일꾼들이다. 영업을 하든 엔지니어링을 하든 진짜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 애플에 종사하는 직원은 일이 너무 많아 사적으로 만나는 것조차 어렵다.[사진=뉴시스]
✚ 실리콘밸리의 소수 대기업 문화가 긍정적으로만 비치는 것도 같다.
“애플에 다니는 사람은 일이 너무 많아 만나기 어려울 정도다. 실리콘밸리의 근로자 대부분은 집에 가서도 일을 한다. 늦은 밤까지 이메일을 팔로 업(follow-up)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원격조정 등을 통해 일을 하는 데 좋게 말해 스마트워크다. 효율적이지만 알게 모르게 야근을 한다. 야근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있는 건 아니다. 할일이 있으면 알아서 일을 마치는 시스템이다. 업무량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통해 자연스레 야근을 하는 분위기다. 물론 야근을 강요하진 않는다. 주어진 일은 알아서 끝내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롤모델은 나랑 함께 일하는 동료

✚ 구글의 공짜 점심 같은 복지혜택의 내면을 들춰 보면 ‘일을 더 많이하라’는 의미도 있다던데.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부분 회사에서 밥을 먹으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밖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왕복 한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그런 시간을 쓰지 말고 안에서 먹으라는 의미도 분명 있다. 구글뿐만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점심식사로 케이터링을 제공한다. 근로자 입장에서 편한 부분이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일을 더 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대학교나 기업, 관공서 등에서도 실리콘밸리로 견학을 가는 데 사실 얼마나 많이 배워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우는 건 좋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창업문화를 배우겠다고 구글에 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구글은 세계적인 기업,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대기업일 뿐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정신을 배우겠다면 실제 이곳에서 창업한 한국 사람들, 현지인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실리콘밸리 견학 대행업체까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도한 관심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이 많이 이뤄지나.
“실리콘밸리에는 분명 벤처자금이 많이 몰리고 창업도 많이 이뤄진다. 하지만 모두가 창업을 하는 건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도 한국에서 장기적인 성장을 꾀한 후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실리콘밸리의 성공담이 많이 알려지면서 실리콘밸리에 창업을 원하거나 이곳에 진입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와야 하는 곳도 아니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장점은 많다. 목표가 있는 이들은 노력해서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무조건 천국으로 여기고 오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영어 표현 중에 ‘Take with a grain of salt’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선별해서 들으라는 말이다. 요즘 같은 자식 정보사회에선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쏟아진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받아 들여야 한다.”

 
✚ 실리콘밸리의 장점은 분명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실리콘밸리의 장점을 어떻게 국내에 적용시키는 지가 중요한 거 같다. 성공 사례를 보고 본받는 건 좋다. 하지만 무조건 따라 하는 건 문제다. 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무슨 말인가.
“현재 실리콘밸리에는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친 한국의 브레인파워가 많이 모여 있다. 그런데 오랜 이민역사와 함께 인도, 중국의 커뮤니티에 비해 밀리는 경향이 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인의 파워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인도인, 중국인이 될 순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 ‘정답’ 아니다

✚ 한국적인 것, 예를 들어 무엇을 말하는 건가.

“당연히 가능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최근 실리콘밸리에는 빨리 움직이는 게 대세다.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이곳에 접목하면 된다. 빠른 일처리에 작업의 완성도(퀄리티)가 더해지면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 단점이라고 그냥 외면하기보다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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