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호의 유쾌한 콘텐트

콘텐트는 내용물이다. 하지만 문화와 접했을 때 콘텐트는 문화적 가치를 담는 포장지다. 결국 콘텐트의 좋은 질은 콘텐트가 담고 있는 문화적 가치의 수준에서 결정난다. 한류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지금, 곱씹어봐야 할 말이다.

▲ 미국 드라마 '달라스'의 출연진.[사진=더스쿠프 포토]
한류 위기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진원지는 일본이다. 도쿄東京 한인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의 한류백화점이 최근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 롯폰기六本木의 한류 전용 뮤지컬 극장 ‘어뮤즈 뮤지컬 시어터’도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대부분의 한류 드라마도 방송이 중단됐고 음반DVD 판매량도 2012년에 비해 50%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나온다. 원인의 대표적인 문제로는 높아진 콘텐트 가격, 과당 경쟁, 마케팅의 실패 등이 꼽힌다. 당연하지만 해결책으로 질 좋은 콘텐트의 생산과 장기적 측면의 마케팅을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질 좋은’ 콘텐트란 무엇일까? 문화는 물과 같이 흐르고 스며드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밀집된 곳에서 틈이 있는 곳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문화는 경쟁하는 것이다. 그 지역의 문화와 경쟁하고 또 지역을 차지하려는 다른 문화와 경쟁한다.  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생존하는 문화를 흔히 성공한 문화라고 한다. 이런 문화적 경쟁은 류流(wave)라고 명칭된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다.

문화의 힘, 콘텐트의 파워는 동독의 붕괴, 그리고 동구권의 몰락 원인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일지는 모르지만 동구권의 개방과 개혁을 가져온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대중문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월트 디즈니사의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는 동독의 붕괴를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 장벽은 서구의 무기에 의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서구식 사고에 의해서 무너졌다. 그런 사고를 전달한 수단은 무엇이었는가. 다름 아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가 전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베르린 장벽 붕괴 40여일 만에 무너진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Nicolae Ceaucescu)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미국 드라마 ‘달라스’의 방영을 후회했다고 고백했다. 그뿐만 아니라 체코슬라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 옛 동독권의 개방과 개혁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서구 엔터테인먼트 속에 숨은 서구적 이상주의의 힘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서구 엔터테인먼트에서 보고 느낀 것, 엔터테인먼트의 틀 속에 간직하고 있는 서구적 이상주의는 무엇일까.

강준만 전북대(신문방송학) 교수는 공산권 국가들의 국민이 가장 원했던 건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 원한 건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맘대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의 자유였다. “그들이 원한 ‘아메리칸 드림’은 정치에 대한 시민적 참여가 아니라 으리으리한 백화점에서 탐나는 물건을 마음껏 사는 것”이라는 재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그것이 미국 콘텐트가 가지고 있는 힘이며, 미국 문화의 가치다. 부정도 할 수 있고 반발도 할 수 있지만 우리도 수십년 동안 미국 콘텐트를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아메리카 드림, 서구적 이상주의에 함몰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든 한류가 문화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서구적 이상주의와는 또 다른 문화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 메시지를 전달할 매력적 콘텐트가 있을 때 한류는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한류의 위기는 그 지역의 자체 문화, 미국과 같은 서구문화들과 경쟁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가라는 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다른 곳보다 일본에서 한류의 위기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흔히 콘텐트를 내용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화와 접했을 때 콘텐트는 문화적 가치를 담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 결국 콘텐트의 좋은 질은 문화적 가치의 수준에서 결정난다.
류준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연구교수 junhoy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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