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무용론, 왜 나오나

▲ 워크아웃 존폐 문제와 관련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최근 금융위원회가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상시법제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를 통해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을 정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워크아웃은 재산권 침해, 관치금융 등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워크아웃, 과연 필요할까.

웅진, STX, 동양. 세 그룹의 공통점은 유동성 위기를 이기지 못한 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등 구조조정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룹이 사실상 해체된 것도 같다. ‘기업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전체 기업의 10% 정도가 부실 상태에 있고,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렵고 실적개선이 어려울 땐 이 비율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내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방법은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두가지다. 통합도산법을 근거로 한 법정관리는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파산 위기에 처했지만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법원이 대신 관리해 회생시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2001년 한시법 형태로 제정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은 금융기관 주도의 사적 구조조정인 워크아웃의 근거가 된다. 워크아웃은 법정관리와 달리 금융기관이 자금을 조달해 기업 정상화를 지원할 수 있다. 기촉법은 현재까지 세번 연장됐고, 내년 말에 기한이 종료된다.

두 제도 모두 문제가 있다. 법정관리의 경우, 기존 경영진(최대주주)이 부실 책임이 없는 이상 계속해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문제를 지닌다. 관리인 유지(DIPㆍDebtor In Possession)제도에 따라 기존 경영인이 재산 유용ㆍ은닉을 하지 않았거나 부실의 막대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법정관리 신청 후 관리인으로 선임돼 기업을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헌 법무법인 율우 변호사는 “법정관리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한계기업이 퇴출지연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 기존 경영진을 능가하는 전문경영능력을 갖춘 관리인 집단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고 덧붙였다. 부실경영의 누적으로 도산상태에 이르렀는데 이를 이유로 경영진을 배척하면 어느 누구도 쉽게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는 점이 한계라는 것이다.

또 다른 단점은 법정관리 신청 이후 빌린 채권은 선순위로 보호되지만 청산 절차로 전환되면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운전자금을 공급하지 못해 더욱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반면 워크아웃은 금융기관 가운데 대출 채권을 적게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기촉법에 따르면, 채권 금융기관협의회의 의결은 75% 이상의 신용공여액을 보유한 채권 금융기관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수 있는 채권 금융기관 사이에 단지 75% 이상의 신용공여액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25%의 신용공여액을 제공한 채권금융기관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다수의 횡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워크아웃은 금융당국이 채권 금융기관을 통해 대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이용된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른바 ‘관치官治 구조조정’이다.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금융회사가 당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금융당국이 시장 논리보다는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금융기관→대기업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수많은 법리적 문제에도 금융위원회가 기촉법을 통해 부실화된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관여하고 있다”며 “기촉법은 관치금융의 얼마 남지 않은 청산돼야 할 유산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올 3월 선제적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촉법을 연내 상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기촉법의 상시법제화가 또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기촉법은 2001년 제정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법조계와 산업계간 존폐 문제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워크아웃제도, 폐지가 옳은 방향

법조계는 기업의 구조조정은 법원을 통한 일원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웅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기촉법상 워크아웃은 사적 구조조정 절차로 자율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기업과 채권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논의해 경영정상화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장려돼야 한다. 하지만 채권 금융기관이 우위에 서서 주도권을 갖도록 법이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반면 산업계는 모든 부실기업을 현재의 법원 파산부에서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기촉법의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정용석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부장은 “경제구조가 복잡 고도화되면서 통합도산법만으로 다양한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법원 단독으로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것보다는 채권 금융기관의 협조를 통해 구조조정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다”고 설명했다.

▲ 기업 구조조정 관련 법제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가 6월 1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김기식 의원실 제공]
전문가들은 한국은 법원 이전 단계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시장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기촉법을 당분간 유지하고, 추후에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사모투자펀드를 비롯한 자본시장 수단을 통한 자산 매각, 자본확충, 지배권이전 등 사전적 구조조정을 적기에 진행할 수 있는 시장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며 “부실기업의 상당수를 시장원리에 따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전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갖춰져야 기촉법을 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주채무계열제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주채무계열제도는 금융기관이 여신이 많거나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집단(그룹)을 선정해 재무구조가 건전한지 감독하고 필요한 경우 채권단을 통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제도다. 지배구조 문제든 구조조정 문제든 간에 한국의 법체계는 개별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본주의의 핵심적 주체는 개별기업이 아니라 기업집단이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집단 소속의 개별계열사 구조조정은 기촉법으로 다루면서 정작 그 기업집단 전체의 구조조정은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며 “주채무계열제도를 기촉법 안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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