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인 거주시설

2011년 영화 ‘도가니’이후에도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의 생활은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11년 영화 ‘도가니’이후에도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의 생활은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도가니’를 본 이는 알 거다. 장애인의 인권이 얼마나 유린됐는지, 또 그들의 울부짖음이 밖으로 새어나오기 얼마나 힘든지…. ‘도가니’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장애인 시설의 운영이 투명해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시설물 평가결과’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는 생각이 다르다. ‘장애인 시설은 여전히 감시 사각지대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실은 뭘까.

‘87.9점’. 올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거주시설의 평가점수(2013년 기준)다. 2010년에 비해 6.4점이 올랐다. 사회복지시설 전체 평균 점수(85.2점)보다 2.70점 높다. 특히 장애인 인권에 관련된 ‘이용자 권리’ 부문에서는 93.7점(전체 평균은 90.4점)을 받았다. 장애인 시설들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거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2011년 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인 거주시설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을 적극 점검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경북 경주시에 ‘예티법인’이라는 곳이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2002년 설립한 중증지체장애인 보호시설이다. 보호시설을 직접 만들어 장애인 자녀를 돌보자는 게 취지였다. 그러나 특정시간만 돌봐주는 서비스는 중증지체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부족함이 많았다.

때문에 24시간 보호가 가능한 장애인 주거시설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이 법인의 대표였던 김모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부모들을 설득했고, 필요성을 느낀 부모들은 동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경북 포항시에 예티법인 산하의 중증지체장애인 장기요양시설 ‘다소미집’이 설립됐다. 2010년 7월의 일로, 국가보조금도 투입됐다. 부모들은 ‘이제야 우리 아이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포항의 장애인 거주시설 ‘다소미집’은 장애인들을 ‘서비스’대상자가 아닌 ‘관리’대상자로만 인식해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포항의 장애인 거주시설 ‘다소미집’은 장애인들을 ‘서비스’대상자가 아닌 ‘관리’대상자로만 인식해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러나 작은 희망이 꺾이는 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시설은 최근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여 있다. 부모들은 지난해 7월부터 “아이들이 제대로 관리받지 못해 온몸이 성할 날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부병이나 상처를 입는 건 다반사고, 실내에 있는데도 겨울철엔 동상에 걸렸으며, 배속에서 건전지가 나오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시설 원장의 부실한 회계관리와 공금유용도 도마에 올랐다.

이런 의혹들은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진행된 포항시의 자체감사 결과, 이 시설은 후원금 관리가 엉망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보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사무국장이 장애인들에게 자신이 키우는 개의 먹이를 주도록 시킨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조사가 시작되고 원장은 해임됐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 시설 서비스, 진짜 개선됐나

무엇보다 전임 원장 측이 “해임이 불합리하다”며 해임결정에 불복했다. “사법부가 최종판단을 내리기 전에 포항시가 ‘원장 변경’을 허락한 것은 잘못”이라며 절차상 문제도 제기했다. 더구나 이 원장은 부모들이 제기한 장애인 인권유린, 부당운영 등 혐의를 벗었다. 지난해 12월 법원이 ‘혐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유린 등의 혐의를 입증하기 매우 어렵다”는 부모들의 하소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를 비롯한 직원들도 전임 원장의 편에 섰다. 새 원장이 오면서 자신들의 입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전임 원장과 직원들이 시설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새 원장과 부모들의 진입을 막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부모들이 전임 원장을 상대로 접근금지 가처분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별 소용이 없다. 지금도 전임 원장은 이 시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시설측과 부모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피해가 장애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거다. 부모들은 더 좋은 시설에 자녀를 맡기고 싶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이 시설의 모母법인(예티법인)에 자금을 댔기 때문에 당장 나오는 것도 어렵다.

30여명의 장애인들이 오도가도 못한 채 이 시설에 거주하는 이유다. 부모들 중에 강경 대응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좋게 좋게 해결하자”며 마음을 돌린 부모들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사태를 지켜본 한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주 벌어져 기가 막힌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생긴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 부모에게 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부모들은 쩔쩔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설 직원들은 ‘내가 그런 상처까지 어떻게 신경쓰느냐’며 발뺌한다. 이곳에서는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예티법인 산하의 ‘다소미집’은 이런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본지가 수차례 취재를 요청했음에도 “담당자가 없다” “조금 후 연락을 주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했다.

장애인 관련 시설이 한해에 정부(보건복지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시설 신축ㆍ개보수 등)만 2013년 기준으로 516억원(거주시설 지원이 353억원)이다. 시설운영비는 정부(200 5년부터 지방으로 이양돼 안전행정부가 담당, 2015년부터 보건복지부로 이관)와 지자체가 각각 6대 4비율(서울은 반반)로 부담한다.

지난해 안행부가 장애인 복지비로 지방에 내려보낸 보조금만 1225억원이다. 말하자면 장애인 거주시설은 세금으로 설립ㆍ운영되고, 해당 직원의 월급도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일부 기업으로부터 후원도 받고, 장애인 부모들에게는 한달에 약 40만원의 시설이용료도 받는다.

장애인 시설 측이 장애인과 부모에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의무이자 책무다. 인권침해 여부를 떠나 부모들이 만족하지 못하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역시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 시설물 중 상당수는 공금유용, 폭력과 폭언, 체벌, 성폭행 등 사건사고에 얼룩져 있다.

올 4월 전북 익산에서는 축사를 개조해 엉터리 장애인시설을 만들고, 장애인 수당을 가로챈 원장이 구속됐다. 3월엔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인강재단이 장애인 보조금을 유용하고, 노동착취와 인권유린까지 저지른 정황이 드러나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1월에는 전주의 자림복지재단과 경기도 모처의 장애인 시설 원장이 공금유용과 여성 장애인 상습 성폭행으로 구속됐다.

한편에선 제도적인 측면이나 시설운영체계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그러나 장애인 시설 관련 제도와 운영시스템을 개선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장애인 시설의 특성상 ‘원장과 직원들이 작정하고 감추면’ 문제가 외부로 드러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시설평가결과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더구나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시설을 전수조사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접수된 시설만 조사를 진행한다. ‘문제를 잘 감추는 시설’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장애인 정책의 방향설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게 사회복지 전문가와 장애인, 그리고 그들 부모의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시설의 기본은 장애인 관리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장애인을 ‘수용’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시설장이 목사라면 장애인들의 기상시간은 새벽 4시다. 새벽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저녁식사 시간은 보통 5시 내외다.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맞추려고 그러는 거다. 이건 복지가 아니라 격리다. ‘수용이 만사’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장애인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사라질리 없고,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도 나올 수 없다.”

장애인이 차별을 받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애인의 탈脫시설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의 김정하 연구원은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의 70.3%가 사회에서 생활할 여건만 되면 시설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며 “이런 의지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권유린”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거시설이 없어도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자립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 ‘도가니’ 이후 투명성이 개선됐다는 장애인 시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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