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총괄회장의 고민

현역을 지키고 있는 국내 최고령 기업인 신격호(92) 롯데그룹 총괄회장. 65년이란 긴 세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롯데를 세계적 기업군으로 키워낸 그의 평생의 꿈이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 잠실벌 제2롯데월드 건설사업이 ‘안전과 시민’이란 당초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나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가운데)이 2001년 5월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고향마을잔치 행사장에 나와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랄까.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지난 27년 동안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업을 고국인 서울 잠실벌에서 펼쳐왔다. 제2롯데월드를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그의 야심은 은퇴기에 접어든 자신의 나이도 잊게 만들었다. 평소 그는 “서울에 세계 최고 높이의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이 여생의 꿈” “내 조국에도 기념비적 건물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 그런 꿈은 그의 최근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고령의 나이로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지난 8월 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을 방문한 것. 임시개장 승인 결정을 앞두고 ‘안전’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였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이 최근 제2롯데월드 현장에 두 차례 다녀왔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현장을 둘러보며 “안전에 만전을 기해 시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가 제2롯데월드 현장에 간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공사가 시작된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는 주말마다 현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통원치료를 받으며 사무실에만 머물렀다.

▲ 서울 송파구 소재 제2롯데월드 저층부 3개동 프리오픈 첫날인 9월 6일 오후 프리오픈 투어에 참가한 시민들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3일 서울시는 제2롯데월드 저층부 3개동의 추석(9월 8일) 전 임시개장 승인을 다시 한번 미루기로 결정했다. 7월에 이어 두번째다. 안전과 교통난이 우려된다는 시민여론을 감안한 조치였다. 임시개장 승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추석 연휴 기간을 포함한 열흘가량의 ‘프리오픈’(Pre-openㆍ사전 개장) 기간을 운영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 기간에 시민들로 하여금 안전과 교통문제 등을 직접 지켜보게 한 다음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매우 보기 드문 조치에 롯데측은 당황하고 있다. 123층짜리 월드타워동에 앞서 저층부 3개동(백화점동ㆍ쇼핑몰동ㆍ엔터테인먼트동)을 먼저 개장해 이 사업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챙기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 저층부에는 1000여개 입주업체들이 장사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다. 문만 열면 6000여명이 일을 하게 된다. 월 900억원의 매출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입주업체들의 꿈도 당분간 이뤄질 수 없게 됐다.

신 회장의 속이 얼마나 탔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롯데 측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론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롯데 관계자는 “서울시가 지적한 82개 사항에 대해 철저한 보완조치를 했는데도 임시사용 승인 결정이 미뤄져 아쉽다”고 말했다. 시가 지적한 보완과제를 모두 이행하고, 수백억원대의 공사비가 추가되는 교통대책을 마련했는데도 승인이 또 미뤄져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당초 저층부 개장 시기를 7월께로 예상했던 만큼 이번 결정으로 개장준비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됐다.

고령 이끌고 현장 찾아 안전 강조

‘열흘 동안 시민들에게 프리오픈 후 승인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서울시 조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임시개장을 승인해 주기 위한 통과의례” “안전과 시민불안을 볼모로 한 서울시의 사고 면피용 꼼수” “시민들에게 칼자루가 넘어가 승인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시장의 정무적 판단에 롯데가 희생됐다” “세월호와 싱크홀 여파가 제2롯데월드마저 삼켰다” “서울시의 무책임한 행정에 롯데만 골병들었다” 등등.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일단 9월 임시개장은 물 건너간 것 같다. 프리오픈 후 판단과정을 거치다 보면 10월에 가야 어떤 형태로든 다음 결정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제2롯데월드는 어느 모로 보나 신격호 회장의 필생의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사업 규모가 엄청나다. 지하 6층, 지상 123층, 높이 약 555m의 초고층 복합빌딩 건설에 드는 기본비용만도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정상 가동이 되면 막강한 상권이 형성돼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연간 250만~300만명의 해외 관광객을 유치해 3000억원 이상의 관광 수입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 또한 지난 27년 동안 이 사업에서 보인 신 회장의 집념은 다른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했다.

1987년 서울시로부터 대지(시유지)를 구입(당시 819억원, 올해 공시지가 2조7000억원 상당)한 신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제2롯데월드 건설을 추진해왔다. 비행 고도 문제로 군 당국과 힘겨운 줄다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건축허가가 났다. 사업 추진 24년 만인 2011년에야 비로소 착공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마스터플랜을 23차례 변경한 뒤 최종 설계도를 결정할 정도로 집념을 보였다. 올 8월 말 현재 공정률은 80%에 가까우며, 2016년 하반기 완공 예정이다. 사업 착수(대지구입)부터 완공(예정)까지 30년이란 긴 세월이 드는 셈이다.

이처럼 사업기간이 길다 보니 사업 막판에 새로운 복병들을 만난 것이다. 우선 제2롯데월드 사업 기간(약 27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엄청나게 변했다. 건물이나 사업 자체의 중요성보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안전과 행복감이 얼마나 더 높아지는지가 우선시되고 있다. 세월호나 싱크홀 여파가 그 같은 트렌드를 더욱 강화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완공 후 수익성을 제대로 보장받겠느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 가치가 10조원을 훨씬 웃돌고 롯데의 개발이익이 천문학적 수준에 달할 것이므로 그런 우려가 옳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완공을 앞두고 새로 부담하는 비용을 커버하고도 남는 장사가 될 것이란 얘기다.

안전 위협하는 변수 ‘수두룩’

신격호 회장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제2롯데월드 앞에는 아직도 ▲석촌호수 수위 저하 현상 ▲인근의 싱크홀 발생 ▲‘초대형수족관’ 바로 밑 변전소 안전 문제 ▲주변 교통난 등이 도사리고 있다. 시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석촌호수 물 유실 현상이다. 롯데 측은 제2롯데월드 공사와 석촌호수 수위 감소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된 후 석촌호수 물이 왜 줄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아직 없었다. 석촌호수 수위 저하 원인에 대한 서울시 용역 결과는 내년 5월에나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사로 지반에 균열이 생기면서 석촌호수 물이 지하로 유입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지하수 흐름이 변하면 지반이 약해지거나 싱크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최근 잠실 주변에서 일어난 싱크홀 공포까지 겹쳤다. 서울시는 잠실 싱크홀 발생이 지하철 공사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공포감이 없어진 건 아니다. 한국전력이 제2롯데월드 지하부에서 운영 중인 변전소 바로 위에 대형 아쿠아리움이 건설돼 있어 안전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앞으로도 90대 고령 신격호의 마지막 꿈 달성을 계속 방해할 공산이 커 주목된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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