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일~10월 17일 올빼미 공시 분석

▲ 기업 주가에 부정적인 정보가 주로 증권시장 거래가 마감된 후 공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증시에서 ‘올빼미 공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업 악재를 주로 장이 마감된 후 공시한다는 얘기인데, 주가하락을 막기 위한 꼼수다. 더스쿠프가 올 8월 1일~10월 17일 금요일, 공휴일 전날 유가증권 시장의 악재성 공시를 비교ㆍ분석했다. 주식거래시간에 공시된 것보다 거래종료 후 보고된 악재가 10배나 많았다.

올 9월 19일(금요일) 국내 증권시장 거래가 끝난 오후 5시 37분. STX는 인도네시아 합작법인ㆍ대주주가 자카르타 고등법원에 청구한 손해배상과 관련, 2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청구금액은 972억원가량으로 STX 자기자본 대비 6.4%에 해당하는 규모다.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는 것은 기업에 악재로 작용한다. 국내 시장에 소식이 전해지면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STX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9월 20일(토요일)~21일(일요일)을 앞두고, 금요일에 공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올빼미 공시’가 판을 치고 있다. 올빼미 공시는 기업이 장이 마감된 후에 소송ㆍ과징금 부과 등 악재를 공시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금요일 또는 증시가 열리지 않는 휴일 전날 쏟아진다. 휴일을 앞둔 경우, 투자자의 주의가 평상시에 비해 분산되기 쉬워 투자자가 부정적 공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8월 1일부터 10월 17일까지 금요일과 휴일 전날 유가증권 시장의 공시 현황을 비교ㆍ분석한 결과, 주식 거래시간(오전 9시~오후 3시)에 공시된 악재는 5건에 불과했다. 반면 거래 종료 후(3시 1분~7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보고된 악재는 이보다 10배 많은 51건으로 조사됐다. 악재성 공시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했다. 소송ㆍ과징금 부과, 최대주주와 친인척ㆍ계열사 임원의 지분 매각이다. 소송은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그 자체로 기업 리스크로 여겨지고, 주식 매각 역시 주요 주주가 빠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보통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8월을 보면, 첫번째 금요일인 1일 장 중에 공시된 악재는 없었다. 반면 장 마감 이후 주식을 매도하는 보고서(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가 5건으로 나타났다. 디올메디바이오ㆍ사조산업ㆍ동아에스티ㆍ사조오양ㆍ녹십자 등이다. 8일(금요일) 역시 증시가 닫힌 후에만 주식 매도 5건(선창산업ㆍ네이버ㆍ샘표식품ㆍ혜인ㆍ한국화장품), 소송 등의 제기ㆍ신청 1건(LS산전)이 공시됐다. 그중 샘표식품이 5시 12분에 공시한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가 눈에 띈다. 최대주주인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의 친인척 박영선씨가 5월 20일부터 6월 24일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보유한 주식 2만710주(0.58%)를 전량 매각했다는 내용이다. 공시한 8월 8일과 마지막 매도일의 차가 무려 44일이다.

▲ [참고 | 8월~10월 17일까지 금요일과 공휴일 전날 기준, 악재는 소송과 과징금 부과·최대주주 등 지분 매각]
현재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서신고와 관련된 공시는 한국거래소에서 보고기한을 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지체 없이, 당일 기준’을 기본으로, ‘회사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빠르게’ 공시하면 된다.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는 자율규제기관이라서 이를 위반해도 제재할 수 없다. 소송 등의 제기ㆍ판결 역시 당일 공시해야 하지만 기준이 판결 시점이 아닌 ‘기업이 확인하는 시점’이다. 해외 재판의 경우 대리인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확인하는 시점이 지체될 수 있다.

8월 15일 광복절 전날인 14일(목요일)에는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가 장 중 1건(아모레퍼시픽), 마감 후 3건(다우기술 ㆍSK C&Cㆍ대한제강)이 공시됐다. 22일(금요일)은 장 마감 후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 1건(경인양행)만이 있었다. 29일(금요일)에는 장 중 소송 등의 판결 1건 (LS산전)이 공시됐다. 8월 한달간 장 중 공시된 악재는 2건에 불과했고, 15건이 장이 끝난 뒤 공시됐다.

9월 장 중에 공시된 악재는 추석 연휴(6~10일)와 연결된 5일(금요일) BGF리테일이 보고한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 1건이 전부였다. 5일(금요일), 12일(금요일), 19일(금요일), 26일(금요일) 공시된 악재 24건 모두 장이 끝난 뒤 보고됐다.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 19건(동일방직ㆍ유유제약ㆍ전방ㆍ경방ㆍGSㆍ대한제분ㆍ한일시멘트ㆍ서울도시가스ㆍ기아자동차ㆍ현대자동차ㆍ현대하이스코ㆍ현대건설ㆍ경방ㆍGSㆍ동아에스티ㆍ코웨이ㆍ계룡건설산업ㆍ대덕GDSㆍ디올메디바이오ㆍ한국투자금융지주), 소송 등의 판결 3건(현대산업개발ㆍSTXㆍ금호산업), 벌금 부과 2건(대호에이엘ㆍ동부건설)이었다.

휴일 전날 저녁을 노린다

10월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17일 현재까지 금요일 또는 휴일 전날 장 중에 공시된 악재는 2건에 불과했다. 장 마감 후 공시된 악재는 12건이었다. 3일 개천절 전날인 2일(목요일), 8일(수요일, 익일 9일 한글날), 10일(금요일)에는 장 중 공시된 악재가 없었다. 그러나 장 마감 후에는 소송 등의 판결 1건(하나금융지주, 2일), 소송 등의 제기ㆍ판결 2건(아티스ㆍ금호산업, 8일),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 2건(동부건설ㆍ현대제철, 10일)과 소송 등의 판결 3건(넥솔론ㆍ하나금융지주ㆍ금호산업, 10일)이 공시됐다. 17일(금요일) 장 중 최대주주 등 소유주식변동신고서 2건(코스모신소재ㆍ한라홀딩스)만이 있을 뿐이다. 이날에는 횡령ㆍ배임 사실 확인 2건(동양ㆍ동양네트웍스)이 공시됐다.

이처럼 기업들이 장 마감 후 악재를 공시하는 것은 주가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금요일 또는 휴일 전날 장 마감 후 악재를 공시하는 게 월~목요일(오전 7시~오후 7시 공시 가능시간) 또는 금요일 장 중에 공시하는 것보다 주가 하락폭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시장이 악재를 바로 받아들이는 것과 하루 이틀 시간을 두고 접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문제는 국내 증시에 올빼미 공시가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한 투자전문가의 설명이다. “기업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라도 주가 하락을 막으려고 한다. 특히 기업의 주가는 최대주주인 그룹 총수의 재산으로 여겨진다. 다른 공시 담당자들은 주가 방어를 위해 악재는 전략적으로 공시시기를 조절하는데, 과연 자신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시는 기업의 실상을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제도다. 투자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기업 공시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시기를 조절해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투자자 역시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공시의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지체 없이, 적시에(timely)’인데 이미 시장에서 이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고 지적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