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쇼생크 탈출 (끝)

준비 없이 가석방된 브룩스의 자살과 달리 주인공 앤디는 꾸준히 탈출을 준비해왔다. 앤디가 탈출을 동경한다는 낌새를 본능적으로 느낀 교도소장은 앤디를 조롱하는 듯한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구원은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것(Salvation lies within)”이라며 의미심장한 충고를 한다. 영악한 교도소장의 그 한마디가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것일지도 모른다.

▲ 앤디는 37만 달러라는 교도소장의 돈을 구체적인 도구로 삼아 탈출을 계획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쇼생크의 현자 레드의 태도도 브룩스의 자살 사건 이후 바뀌었다. 그동안 가석방 심사 판사들에게 아부하던 그는 쇼생크에서 ‘썩는 길’을 택한다. 가석방 심사 날 레드는 판사들에게 “내가 교화되었느냐고? 개똥 같은 소리…. 가석방? 개나 줘 버려라”며 무식하면서도 용감한 최후 진술을 한다. 앤디에게도 바깥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희망은 사람을 병들게 할 뿐이라는 지혜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현자 레드와 영악한 교도소장도 까맣게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앤디는 단순히 ‘탈출’만을 꿈꾼 게 아니라 탈출 이후의 ‘새 세상’을 살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다. 교도소장이 죄수들의 노역으로 생긴 수익금과 정부보조금 등을 한푼 두푼 가로채 만든 장부를 회계처리해 주면서 그 돈을 모두 갖고 튈 계획을 짰다. 교도소장의 전 재산 37만 달러를 빼돌리고, 위조 신분증으로 다시 태어나 멕시코의 지후아테네호(Zihuatenejo)라는 한적한 해안마을에 정착한다는 거였다.

거기서 조그마한 모텔과 낡은 배를 구입해 그걸로 생계를 이으며 여생을 보낼 ‘실천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또 ‘팔방미인’인 레드를 사업의 동반자로 영입할 치밀하고도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앤디 역시 브룩스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바깥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곳에서 무일푼 탈출자인 자신에게 어떠한 자유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계획을 진행 중인 앤디에게만은 “구원은 네 마음속에 있다”는 교도소장의 진리도, 현자 레드의 지혜도 적용되지 않는다. 앤디에게만은 구원은 저 밖에 있을 수도 있고, 희망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감옥이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레드의 논리와는 다른 “희망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반대논리가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앤디의 계획은 성공했다.

올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 만에 소위 ‘세월호 3법’이라는 ‘세월호 특별법’과 ‘유병언법’, 정부 조직법 개정이 타결됐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수십년 묵은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번 법안들은 이에 대한 반성과 적폐로부터의 ‘해방’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 세월호 관련 법률이 타결됐지만, 그걸로 우리 사회의 개혁이 완성됐다고 할 수는 없다.[사진=뉴시스]
홍해는 끝이 아닌 출발점

그런데 수십년 적폐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우리의 여정은 어느 정도 지점에 와 있는 걸까.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 파라오의 군대를 따돌리고, 이집트 영역을 벗어난 정도는 됐을까. 혹은 앤디가 감방 벽을 뚫고 1㎞ 가까이 되는 하수도를 기어 마침내 교도소 밖까지 나온 정도쯤 됐을까. 모두 관대한 평가긴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 지점에 와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해방은 아직도 멀기만 한 듯하다.

출애굽기의 드라마는 사실상 홍해가 끝이 아니라 시발점이었다. 또 앤디의 탈출 드라마는 감방 벽 뚫기 못지않게 교도소장의 37만 달러 가로채기에 있었다. 말하자면 ‘새 세상, 새 정치’의 개혁 여정은 지금부터라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홍해로부터 가나안까지는 멀고도 먼 길이다. 거친 사막과 황야도 지나야 한다. 개혁 과정에서 수많은 이탈자가 발생하고, 불만은 고조되며, 일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아우성칠 것이다. 브룩스가 쇼생크를 그리워하듯 과거의 ‘길들여진 질서’가 차라리 나았다면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다. 모든 변혁의 시기에 반동反動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끔찍한 기록이지만 모세는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고 선동하는 ‘반동분자’ 3000명을 신神의 이름으로 처단했다. 이후 모든 혼란과 혼돈을 이겨내고 가나안에 이르도록 한 것은 모세의 비전제시와 지도력이었다. 마찬가지로 앤디가 새 삶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탈출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조 신분증과 37만 달러라는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앤디 역시 브룩스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여기서 이 영화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이 왜 원작소설의 제목을 「쇼생크 구원과 리타 헤이워스(Shawshank Redemption and Rita Hayworth)」로 뽑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집트를 탈출했지만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한 채 사막에서 방황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아우성 쳤다. 이런 백성을 무마하기 위해 모세의 동생 아론이 꺼내든 무기는 ‘황금송아지’라는 허상이었다. 아론은 황홀한 순금의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보여준다.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둘러싸고 매일 축제를 벌이며 고통을 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나안을 향한 행진은 거기에서 멈췄다. 

허상을 깨야 자유를 얻는다

쇼생크 교도소에서 리타 헤이워스가 등장하는 영화를 죄수들에게 보여주며 교도소의 불만과 고통을 잊도록 하는 장난치는 것과 같다. 모세는 대로大怒하고 황금송아지를 경배하고 즐거워하는 무리 3000명을 집단학살하는 매우 과격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리타 헤이워스와 황금송아지라는 허상과 감성적 호소만으로 황야를 건너 ‘해방’을 완성할 수는 없다. 탈출의 완성을 위해서는 모세의 지도력도 필요하고 앤디가 마련한 37만 달러라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현찰’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런 구체적인 도구들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 길고도 험난한 황야의 여정을 앞두고 그런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계획들이 마련돼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더스쿠프|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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