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파리목숨

▲ 빅딜이 성사되면 매각되는 업체의 임원 대부분은 회사를 떠난다. [사진=뉴시스]
빅딜이 성사됐다. 시장은 인수ㆍ합병(M&A) 후 시너지 효과로 떠들썩거렸다. 하지만 매각된 업체의 임원진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인수 주체가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를 게 뻔해서다. M&A가 일어나면 ‘별(임원)’은 떨어진다. 20년 넘게 직장에 충성해 별에 올랐지만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한화그룹은 11월 26일 삼성그룹의 석유화학ㆍ방위산업 4개 계열사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시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통 큰 결정’이라며 인수 주체 오너를 주목했다. 그렇다면 매각된 업체의 성장을 이끈 핵심 임원은 어떻게 될까. 삼성-한화 빅딜 이후 시장에 떠돈 말이다. “(매각되는 지) 사장도 몰랐다” “임원은 좌불안석”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겠다”

물론 인수ㆍ합병(M&A)에 성공한 기업은 언제나 ‘고용승계원칙’을 꺼내든다. “우리는 인력을 중요시 여긴다. 함께 시너지를 내보자”면서 말이다. 하지만 피인수업체의 임원 대부분은 회사를 떠난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기업의 ‘별’이라고 불리지만 변수 앞에서 이보다 약한 존재는 많지 않다. 그 불씨 중 하나가 바로 M&A다. 업계에선 “M&A가 성사되면 별(임원)이 진다”는 얘기가 나돈다.

더스쿠프가 최근 M&A가 일어난 기업 임원의 퇴직률을 조사했다. 대상은 대우건설(금호건설 2006년 인수), 동아건설산업(프라임개발 2008년 인수), 하이투자증권(현대미포조선 2008년 인수), 대한통운(아시아나항공 2008년 인수), CJ대한통운(CJ 2011년 인수) 등 5개 기업으로 정했다. 매각 1년 전 임원 수를 기준으로 잡고, 매각 후 3년까지의 퇴직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M&A가 일어난 해의 평균 퇴직률은 등기임원 60.28%, 미등기임원 15.98%로 조사됐다. 매각 3년 후의 평균 퇴직률은 등기임원 93.14%, 비등기임원 67.24%로 나타났다. 등기임원은 대표이사 등 그 기업이 속한 그룹 오너와 연결된 핵심 조직원이기 때문에 매각 후 퇴직률이 높았다. 기업별로 매각 3년 후 퇴직률을 보면 대우건설 100%, 동아건설산업 100%, 하이투자증권 100%, 대한통운 80%, CJ대한통운 85.71%였다.

그렇다면 M&A가 이뤄진 후 임원이 잘려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M&A가 이뤄졌다는 건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기업이 팔리는 해에 인수 주체 그룹의 총수가 피인수업체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조사한 5개 기업 중 4개 기업이 그랬다. 대우건설(금호건설: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대한통운(아시아나항공:박삼구 회장), CJ대한통운(CJ:이재현 CJ그룹 회장), 동아건설산업(프라임개발: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이다.

하이투자증권은 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한 지 1년 뒤인 2009년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물론 그는 현대중공업 측 인물이다. 현대중공업이 총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4개 기업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 최대주주(지분율 10.15%)지만 다른 그룹 총수처럼 직접 경영에 나서지 않는다.

총수와 함께 기업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임원진도 바뀐다. 인수한 기업에 그룹 경영 시스템을 입히고, 그룹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김영진 김영진M&A연구소 소장은 “기업의 오너가 바뀌었는데 실무를 담당하는 조직에 변화가 없을 수 있겠냐”며 말을 이었다. “경영이라는 자체가 지휘계통이다. 자기 사람이 들어와야 일이 수월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오너가 바뀌었다고 임원이 한 순간 잘리는 것은 그동안 갈고닦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인데, 이는 회사 차원에서 손해로 작용한다.”

피인수기업 임원 ‘좌불안석’

때문에 기술 파트에 있는 임원보다 경영기획ㆍ관리ㆍ재무 담당 임원의 퇴직률이 높다. 이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은 그룹 내에서 충원할 수 있지만 기술을 지닌 전문 인력은 쉽게 영입할 수 없어서다. 2006년 매각된 대우건설을 보면, 매각 1년 전인 2005년 48명의 미등기임원 중 6명이 경영기획ㆍ재무ㆍ관리ㆍ투자 파트 임원이었다. 그러나 2년 만에 모두 회사를 떠났다. 퇴직률이 100%다. 같은 기간 미등기임원 전체 퇴직률을 보면 66.66%고, 매각 3년 후인 2009년의 퇴직률은 81.25%다.

동아건설(2008년 매각)과 CJ대한통운(2011년 매각) 역시 매각 3년 후 미등기임원의 퇴직률이 각각 80%, 80.95%로 높았다. 같은 기간 대한통운(61.53%)과 하이투자증권(62.5%)은 상대적으로 퇴직률이 낮았다. 2008년 매각된 대한통운은 인수 주체인 아시아나항공이 2010년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가며 구조조정 칼날이 무뎌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투자증권의 경우, 이종업종 간 M&A가 이뤄졌기 때문에 퇴직률이 비교적 낮았다. 인수 주체인 현대미포조선이 속한 현대중공업그룹 내 금융 계열사가 없기 때문에 하이투자증권 기존 임원을 어느 정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같은 업종의 사업을 하는 회사를 M&A했다면 업무가 중복된다. 그 일을 하는 임원도 여러 명이다. 피인수기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다른 산업 분야에 있는 기업을 인수한다면 전문성을 지닌 기술 파트 임원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도 결국 회사를 떠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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