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경영권 세습’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
재벌 ‘경영권 세습’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
  •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 호수 126
  • 승인 2015.01.2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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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국립생태원장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정부는 특정 기업이 불공정하게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재벌의 경영권 세습은 자연계엔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본래 생태계는 완벽하게 능력이 경쟁의 승자를 결정하는 능력 위주의 세계예요. 이렇게 볼 때 경영권을 세습하는 재벌 시스템은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최재천(61) 국립생태원장은 “재벌 총수는 자녀에게 혹독한 후계자 수업을 시켜 누가 봐도 회사를 맡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을 받든지 아니면 경영권을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100년, 200년 된 기업 중 경영권을 세습하는 데는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재벌의 세습 실험은 90% 실패할 겁니다. 우리도 장차 100년, 200년 된 기업이 다수 출현하게 되면 세습이 저절로 없어지겠죠. 그만큼 세월이 흘렀는데 세습을 하고도 살아남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단적으로 모든 왕조가 망했듯이 삼성도 언젠가 망할 거라는 건 자명합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대부분 1부1처제로 살아가는 새를 예로 들었다. 보통 암수 두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는데 다 큰 새 서너 마리가 함께 사는 둥지가 있다고 한다. 첫 배에 나온 새끼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경우다. 서식지가 포화 상태라 새끼가 다 크고도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새 세계의 캥거루족이다(최 원장은 실제 캥거루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모 새가 죽으면 둥지를 물려받을 수 있을까? 수성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힘이 없으면 다른 숲에서 날아온 젊은 새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형제자매 새끼리도 혈육을 쫓아낸다.

기업에 흔히 비유되는 꿀벌 사회에서는 세습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공주 벌들이 혼인 비행을 나가 짝짓기를 하고 돌아오면 여왕벌이 가장 성공한 딸에게 벌통을 물려준 후 일벌의 절반을 인솔해 떠나는 것이다. 최 원장은 “동물계의 거의 유일한 세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왕벌은 재벌처럼 식솔을 모두 자식에게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재벌은 자수성가한 창업주도 자신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부를 통째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습니까?”

✚ 오너 승계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오너 후계자 중에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처럼 경영 능력, 사람 됨됨이, 문화적 소양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번번이 훌륭한 자식이 태어나면 몰라도 어쩌다 능력이 떨어지는 자식이 태어나면 그 기업은 망하는 겁니다. 술 취한 사람이 방파제 길을 걸어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 길이 길다면 반드시 바다에 빠지듯이 확률적으로 오너 승계를 하는 기업은 언젠가는 망하게 돼 있어요. 오너 승계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리더십이 지속되면 다시 말해 순혈주의를 고집하면 위기 발생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알을 잘 낳게 만들려 무수한 인공 선택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유전적으로 거의 똑같은 복제닭이 조류 인플루엔자(AI)에 속수무책인 것과 같아요. 돼지 우리에서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돼지를 키우면 구제역이 돌아도 생매장 등 무자비한 학살을 하지 않고 병에 걸린 돼지만 골라내면 됩니다. 독감이 돈다고 온 가족이 걸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어쨌거나 재벌도 현재의 오너가 후견인으로 살아 있는 동안엔 안 망하겠죠. 그러나 확률적으로, 자손 대대로 지속가능할 거로 기대할 순 없습니다.”

 
✚ 주인이 있는 기업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자연계의 섭리인가요?
“제대로 된 리더를 세우라는 거예요. 능력 있는 자식이 태어나면 경영을 맡기고 자식이 능력이 안 되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죠. 도요타가 이렇게 전문경영인 체제와 오너 체제를 오갑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경영을 하기만 해도 실패할 확률이 낮아집니다. 암수가 만나 교접을 하는 유성생식 시스템이 지구적 대세가 됐고, 섹스를 하는 생물이 지구를 장악한 것도 바로 다양성의 힘으로 설명할 수 있죠. 무성생식으로 이뤄지는 번식은 말하자면 딸만 낳는 거거든요. 번식에 훨씬 유리한 반면 유전적 다양성이 전혀 없어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몰살하고 맙니다. 박테리아가 좋은 예죠.”

✚ 대기업의 갑질 등으로 대기업ㆍ중소기업간 양극화가 심각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정부는 무얼 해야 하나요?
“정부가 불가사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바닷가 물웅덩이의 최상위 포식자는 불가사리입니다. 물웅덩이에서 불가사리를 계속 끄집어내면 그 밑의 가장 경쟁력 있는 2~3종만 살아남아 생물 다양성이 오히려 낮아집니다. 불가사리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웁니다. 결국 가장 많이 걸리는 놈, 경쟁력이 있어 많이 살아남은 종이 불가사리의 주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불가사리가 있으면 역설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종도 살아남게 되죠. 정부는 경쟁력 있는 특정 기업이 불공정하게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살아남아요. 현재는 정부가 성과를 내려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에 너무 심하게 굴지는 말라는 상충된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라고 할까요? 싹쓸이 하는 판을 만들어 놓고 까치밥은 남기라고 하는 격이죠.”
 
순혈주의 고집하면 변화에 대응 못해

최 원장은 동물행동학ㆍ사회생물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다. 미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로 서울대 교수를 거쳐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내는 동안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고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존폐에 대한 생물학적 의견서’를 제출해 2004년 남성으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기도 했다.

✚ ‘여성의 세기’에 기업들이 어떻게 스스로 적응하고 또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요?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이 21세기는 기업의 성과가 여성 인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합니다. 채용 대상인 모집단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건 모집단의 절반을 포기하는 거와 같아요. 더욱이 우리나라 여성은 교육수준, 인내심, 경쟁력 면에서 세계 최강입니다. 우리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되느냐 못 되느냐의 가장 중요한 변수도 저는 여성 인력 활용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 구체적으로 여성 시대엔 고용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요?
“완벽한 의미의 여성 시대란 부부가 맞벌이를 하되 일주일의 사흘은 남편이, 나머지 사흘은 아내가 바깥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일에 치여 일하는 기계로 살아가는 남성에게도 더 좋고요. 남자들이 술집 가서 객기 부리는 거 말고 인생을 즐기는 게 뭐 있나요? 남자도 명퇴 전 평일에 친구와 북한산도 가고, 내려와 막걸리도 한잔 하고 그러고 ‘야 나 집에 들어가 저녁 준비해야 돼’ 하면서 일어설 수 있어야죠. 직장도 전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야 일이 되는 시대가 아니니 재택근무를 하거나 동네에 있는 지역 사무실로 10시쯤 출근하는 겁니다. 현대 기업이 이렇게 못할 이유가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업 쪽에서도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 최재천 원장은 “인생의 성패는 시간 관리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문제는 성과인데요? 그런 고용 시스템이 과연 성과가 나고 또 지속가능할까요?
“부부 두 사람이 다 일하지만 수입은 혼자 일할 때의 2배가 아니라 1.5배가 되도록 일종의 사회적 합의랄까 대타협이 이뤄져야겠죠. 일자리를 우수한 여성과 나누고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겁니다. 고령화사회 대책으로 임금피크제가 논의되고 있듯이 잘 조율이 된다면 저는 가능할 거로 봅니다. 무엇보다 임금을 좀 적게 받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야겠죠. 자녀 교육 등으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갈 때 많이 받고 정점을 지나면 임금은 줄지만 은퇴 후에도 먹고살 수 있도록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 그런 이상적인 시스템보다 여성 인력 활용을 위해 당장 도입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있나요?
“아모레퍼시픽 같은 회사가 잘하고 있지만 직장 내 탁아소를 운영하고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육아휴직제도를 실시하는 겁니다. 여성 임원의 비율도 높여야죠.”

✚ 단적으로 여성 인력이 늘어나면 업무 효율도 높아지나요?
“조기축구회에 어느 회원 부인이 커피를 싸들고 오면 남자들 뛰는 게 달라집니다. 남의 부인과 어떻게 잘해 보려는 것도 아니고 그 여성이 설사 별로 매력이 없어도 결과는 같아요. 저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남자들이 있는 힘을 다해 뛰는 겁니다. 여성만 있는 그룹에 유부남이 하나 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의 세계가 그렇듯이 사람도 남녀가 섞여 있으면 매너 등 구성원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매사에 더 긍정적이고 협조적이 돼요. 이성이라는 존재가 뭔가 과시하고 두드러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겠죠. 한마디로 남녀가 함께 일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제1의 성」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활동 면에서 생물학적으로 훨씬 탁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뛰어난 언어감각,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 인간관계와 사회정의에 대한 순수한 관심 등 전형적인 여성성이 이른바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현재와 앞으로의 세상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질이라고 설명합니다.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는 ‘리더십은 한때 근육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의 리더십은 사람들과 잘 화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성 리더십이 더 잘 통하는 시대가 됐고 그에 따라 기업 등 상당히 많은 조직에서 여성 리더십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조직이 여성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최 원장은 12년 전 낸 저서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멀지 않은 장래에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고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을 뽑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 여성 대통령이 나왔는데 여성성의 발현이 더디고 여성의 지위도 그다지 높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박근혜 대통령을 남성ㆍ여성 차원에서 바라보는 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젠더의 의미에서 여성으로 살아온 분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통령의 딸로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야 했고, 그 후 정치라는 틀 속에서 어떻게 보면 남동생인 박지만씨가 했어야 할 일을 능력이 있다 보니 본인이 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사실 부모를 총탄에 잃은 충격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분이잖아요? 부모도 보통 부모인가요? 이렇게 본다면 여성계도 대통령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다만 그분이 여성의 지위를 높이려 직접 노력하지 않더라도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됐습니다. 오너의 ‘갑질’로 공분을 샀지만 여자라 더 벌을 받은 것 같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조금 있겠죠. 그러나 박 대통령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서 조 전 부사장은 재벌 3세일 뿐 딸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10년 동안 50여 권의 책을 냈다는 그는 자신의 저서 「과학자의 서재-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에서 시간관리 비법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해야 할 일을 미리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마감이 있다. 난 그 마감보다 앞당겨 일을 한다. 마감이 다 되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심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다음주 일을 이번주에 미리 당겨서 해놓는다. 그러면 쫓길 이유가 없고 당연히 일의 질적 완성도가 높아진다. 모든 일을 그렇게 한다.”

 
그는 스스로 마감날을 정해 할 일을 미리 하는 습관을 하버드대 박사과정 시절 기숙사 사감 일을 하는 동안 학부생들에게서 배웠다고 썼다. “인생의 성패는 시간관리에 달렸습니다. 명문대 및 수도권대 출신과 함께 일해 보니 개인 능력의 차이는 고작 종이 몇장 정도입니다.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보살피는 사감 일을 하면서 관찰하니 공부 말고도 외부 봉사 등 정말 많은 활동을 하는 이 아이들의 비결이 미리 하는 것이더라고요. 한마디로 무슨 일이든 일주일 먼저 마감하면 수준 높게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요.”

마감 앞당기면 질적 완성도 높아져

국립생태원은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연구ㆍ교육ㆍ전시하는 기관이다. 개원한 지 1년, 지난해 전국에서 10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UN 산하 정부간 기구인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지식 및 데이터 대책반(Task Force)을 생태원 안에 두기로 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최 원장은 “신설 기관인데 몇십년 된 기관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갈등이 극심한데 예비타당성을 조사할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성을 따지듯이 생태원이 국책사업의 생태성을 사전에 검토하면 갈등의 소지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KDI가 경제성을 평가하지만 길게 내다보면 해당 국책사업이 삶의 질과 자연 환경을 얼마나 훼손하는지,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받아들일 만한 훼손인지 따져 보는 생태성 조사야말로 예비타당성 평가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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