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LG화학 부회장 R&D 강화 이유

1등 분야가 없다.” LG그룹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오죽했으면 구본무 LG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1등을 하자고 주문했을까. 그런데 최근 LG화학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다른 석유화학기업들이 눈앞의 당근을 좇는 사이, 핵심 원천기술로 돈을 벌 수 있는 중장기적인 R&D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 빅진수 LG화학 부회장(가운데)은 취임 이후 줄곧 R&D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사진=뉴시스]

LG화학이 최근 전례가 없던 인사를 단행했다. 1월 20일 이진규 서울대(화학부) 교수를 LG화학 중앙연구소의 전무급 수석연구위원으로 영입한 거다. LG화학이 현직 교수를, 그것도 임원급으로 영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진규 교수는 106건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100여 건의 특허를 출원한 무기 나노소재(나노 크기의 무기물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서울대가 이 교수에게 종신 교수직을 보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교수는 2월 1일부터 중앙연구소에서 무기 나노소재 기반기술 연구책임자로 근무하고, 신개념 전지소재와 유ㆍ무기 하이브리드 복합체 등 무기 소재 분야 기술개발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 교수의 파격적 영입이 중요한 이유는 LG화학의 스탠스를 읽을 수 있어서다. LG화학은 지난 1월 1일 기존 ‘CRD(Corporate R&D)연구소’의 이름을 ‘LG화학 중앙연구소’로 변경했다. 이름만이 아니다. 이참에 연구비와 연구인력을 늘리는 한편 연구인력의 40% 이상을 박사급 이상으로 채울 계획이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회사의 ‘미래 밑그림’을 읽을 수 있다. 2012년 말 사장에 오른 이후부터 줄곧 연구ㆍ개발(R& D)의 강화를 강조했던 그는 최근 “R&D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이 R&D에 신경을 바짝 쓰는 이유는 뭘까. LG화학이 박 부회장 취임 이후 R&D 투자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박스기사 참조).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현재 석탄화학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R&D를 통해 개발한 기술을 자국 산업에 접목해 검증하고 개선하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품질이 낮으면 내수로 돌리고, 그 내수를 기반으로 다시 R&D에 투자하는 식이다.

유영돈 고등기술원 플랜트엔지니어링 센터장은 “중국 기술이 형편없는 것 같지만 우습게 봐선 안 된다”며 “큰 내수시장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중국의 석탄화학산업 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석유화학시장은 진입장벽이 낮아 돈과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박재형 한국석유화학협회 과장은 “석유화학업종의 진입장벽은 의외로 낮다”며 “중국의 석유화학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현재 특허권료를 받는 곳들은 일본ㆍ미국ㆍ독일 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이 배출되는 국가들이다. 바스프나 미쓰이 같은 곳이 특허권료를 받는 기업들인데, 문제는 중국이 원천 특허기술을 갖게 되는 거다. 만약 도레이나 바스프가 중국 기업과 합작해 항공용 카본화이바 공장을 짓는다고 해보자. 당연히 기술이 이전될 거다. 그럼 한국 업체들은 중국 시장에 발도 못 붙여보고 끝장나는 거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석유화학을 위협하는 존재가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석탄화학으로 급성장 중

최근 석유화학업계가 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R&D 강화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R&D로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 장벽이 높은 화학물질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임경희 중앙대(화학신소재공학부) 교수는 “나프타를 가지고 각종 제품을 만드는 건 현재 중국뿐만 아니라 산유국도 가능한 상황”이라며 “결국 경쟁력을 높이려면 촉매와 같은 화학물질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경희 교수는 “화학물질을 개발하더라도 라인을 멈춰가며 실험을 해야 하는데, 가변성이 워낙 많고 비용이 많이 드니 기업으로서도 한계가 있다”고 부연했다. 황규원 연구원도 “가장 좋은 전략은 석유화학산업에 들어가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따내는 것”이라며 “대체성이 거의 없는 제품의 경우 원천기술 특허료는 제품 가격의 6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R&D 투자 확대와 이진규 교수 영입을 비롯한 연구진 확충 등 박진수 부회장의 R&D 예찬이 이런 상황들을 고려한 포석이라면 어떨까. LG화학 관계자는 “화학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특허가 나오는데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R&D 투자 비용을 늘리면서 석유화학 공정에 들어가는 첨가제나 촉매제, 전지 양극제 등 화학물질 개발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전에는 유기소재(화석연료에서 소재를 얻는 것) 분야 R&D에 중점을 뒀는데, 최근엔 탄소나노튜브나 그래핀 소재 등 무기소재 분야 R&D를 강화하고 있다”며 “이진규 교수 영입으로 이 분야 R&D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조언과 일치한다. R&D의 고삐를 늦추지만 않는다면 꽤 큰 성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거다. LG화학, 지금 당장은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로 힘들다. 하지만 그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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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줄어도 R&D는 확대
R&D 전도사 박진수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R&D 전도사로 손꼽힌다. 1.9%에 머물던 LG화학의 대출 대비 R&D도 박진수 부회장 취임 이후인 2013년 1.9%, 지난해 3분기엔 2%대까지 높아졌다. R&D 투자액 역시 2012년 3865억원에서 2013년 447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4%가량 줄었을 때에도 LG화학은 R&D투자 목표액을 5900억원대로 올려 잡았다. R&D투자액 중 가장 많이 늘어난 부분은 인건비다.

박 부회장이 취임 초기(당시 사장), 미국까지 건너가 R&Dㆍ혁신 분야 학부생과 석ㆍ박사과정 학생들을 초청해 “국적에 관계없이 필요한 인재가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R&D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박 부회장은 “연구 인력을 현재보다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초 연구 인력을 2900명(2013년엔 2500명)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다시 한번 인력 충원을 할 예정이다. 종합하면 박 부회장 취임 이후 LG화학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R&D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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