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돼지 내장을 정갈하게 다듬어야 한다. 손질이 부족하면 내장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왕소금과 밀가루를 뿌려가며 문지르고 헹궈내는 작업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특히 창자의 표면에는 허연 기름이 많이 붙어 있어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야 한다. 그 기름의 성분은 인간의 장간막이나 소장, 대장의 표면에 붙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돼지고기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수많은 과정이 존재한다.[사진=뉴시스]
이게 많아지면 소위 똥배라고 불리는 중년남성의 복부비만이 형성된다. 정상적인 인간의 복부에는 연동운동과 원활한 혈액순환을 위한 복강이라는 공간이 있다. 내장 지방은 복강 속을 차곡차곡 채우며 배를 단단하게 압박한다. 나온 배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단단한 느낌이 들면 내장 지방이 들어찼다는 의미다.  이럴 땐 누워도 배가 꺼지지 않는다. 피하지방은 단열ㆍ보온 기능과 더불어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몸속 깊은 곳 내장지방은 본래 기능을 못한다. 술을 좋아하는 중년 남성들은 내장 지방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다시 순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돼지의 내장 속에는 생전의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위에서 녹은 사료가 암죽 형태로 장 속을 흐르는데 인간들은 그것을 ‘곱에서 나오는 즙’이라며 유실되지 않도록 유의해가며 구워 먹기도 한다. 소화가 끝나기 전 죽어간 돼지의 영양분이 인간의 구미를 당기는 기호식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잡식동물인 인간은 뭐든지 잘 먹는 씩씩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수퇘지의 불까기를 통해 나온 불알도 연탄불에 구워 먹으니 말이다. 이토록 훌륭한 전천후 식성을 가진 인간도 돼지 창자 속에서 쏟아진 회충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내장을 손질할 때는 그것을 홀랑 뒤집어야 한다. 이때 회충들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아늑하고 따뜻한 동굴(내장)에서 자양분을 빨아먹던 눈먼 벌레들은 땅바닥에 던져진 채 최후를 맞이한다.

지구 위에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며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숙주에 기생하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았을 뿐인 회충을 감히 누가 더럽다고 나무랄 것인가. 혹자는 돼지 창자에서 회충이 나왔으니 창자로 만드는 순대도 더러운 게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미네랄이 부족한 돼지가 흙을 핥아 먹었으니 회충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깔끔한 체하는 인간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구충제를 먹던 시절이 있었으니 돼지는 오죽하랴.

이마에 봉 해머를 맞고 억지로 죽어간 돼지라 머리 또한 상황이 좋질 않다. 돼지는 죽어서 최초로 안면 면도를 하게 된다. 손질된 머리는 다시 반으로 쪼개야 한다. 뼈ㆍ피ㆍ살점이 튀지 않도록 신문을 덮은 뒤 도끼로 쪼개어 뜨거운 물에 펄펄 삶아낸다. 그후 뼈를 발라 베 보자기로 싸고 큰 돌을 눌러 놓는다. 편육을 만들기 위함인데 하룻밤이 지나면 또 무엇인가가 주위에 흥건하다. 이 이야기는 다음호에….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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