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제조사 왜 웃나

2015년 1월 1일. 모양도, 품질도 똑같은 담뱃값이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 담배제조사의 ‘마진’이라고 할 수 있는 출고가도 올랐다. 정부가 판매량 감소를 걱정해 담배제조사의 매출을 보전해준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담배판매량이 회복되고 있어서다. 서민 등골은 휘는데 담배제조사는 껄껄 웃고 있다.

▲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면서 담배회사 매출보전 방안을 마련해 빈축을 사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9월 12일. KT&G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전날보다 2.88% 하락한 8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 전일엔 5.55%나 떨어졌었다. 9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의 폭풍은 이처럼 거셌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엇보다 KT&G의 이익이 줄어들 게 분명해 보였다. 정부안에 따르면 담배출고가는 기존 950원에서 252원이 오른 1182원. 이로써 판매가에서 출고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8%에서 26%로 12%포인트 감소했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면서 담배회사의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KT&G를 어둡게 했다. 실제로 2004년 정부가 담뱃값을 25%(500원) 올리자 이듬해인 2005년 담배시장 규모가 23% 축소됐다. 이런 이유에서 담뱃값이 큰폭으로 오르면 담배회사에 손실이라는 논리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2015년 1월 1일. 정부의 계획안대로 담뱃값이 올랐다. 그런데 시장의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KT&G는 1분기 매출 1조1369억원, 영업이익 4285억3500만원, 당기순이익 3087억79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8%, 영업이익은 64.7%, 당기순이익은 55.5% 늘어났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 크게 올라 판매량이 줄었음에도 실적이 개선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KT&G는 지난해 생산된 담배를 올해 판매하면서 재고차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담배는 공장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세금이 붙는다. 때문에 지난해 생산된 담배를 올해 소비자가 구입하면 이전 세금인 1550원만 붙게 된다. 지난해 재고를 올해 판매할 경우 4500원 판매가에 따라 2950원이 담배회사의 매출로 남게 되는 셈이다.

KT&G는 세금인상으로 인한 재고차익이 2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KT&G 관계자는 “소매점에 담배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일정 수량을 공장 출고 상태로 보관해 왔었다”며 “이 담배가 1월 1일부터 세금이 인상되며 담배 한갑당 1768원의 이익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외국계 담배회사인 BAT코리아와 필립모리스코리아도 같은 방식으로 수혜를 입었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나마 KT&G는 향후 4년간 총 3300여억원을 사회와 상생을 위해 투자할 계획이다. 나머지 회사는 이런 계획도 없다.

여기에 소비자 가격저항이 없어지면서 판매량이 다시 회복되는 추세다. 앞으로의 실적 역시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KT&G의 경우 4월 국내 담배시장점유율 58%를 기록, 1월보다 4%포인트 상승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일회성 이익을 제거하면 담배 내수 평균판매단가(ASP)는 지난해보다 약 13% 상승했다”며 “저가품 비중이 과거 22% 수준에서 현재 19%까지 하락하고 있어 실적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는 KT&G의 목표주가를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10만3000원에서 12만6000원으로 올렸다. KDB대우증권도 9만5000원에서 11만5000원으로 상향했다. 백운목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세금 인상 후폭풍으로 하락한 주가는 편의점 판매량 감소폭이 축소되면서 상승 추세”라며 “판매량 감소폭이 축소됨에 따라 다시 KT&G의 투자포인트가 부각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재고량 조절로 영업이익↑

만약 판매량이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되면 어떻게 될까. 지난해 판매된 담배는 894억 개비로 총 44억7215만갑에 달한다. 여기에 이번 인상분인 232원을 적용하면 연간 약 1조1269억원의 추가이익이 발생한다. 이런 비판에 보건당국은 담배회사에도 경고사진 도입과 같은 비용 상승 요인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담뱃값 인상 후 넉달이 지난 지금도 경고사진은 도입되지 않았다.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있으며 시행이 되더라도 18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어 내년 말에나 도입될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인상분은 고스란히 담배회사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담배회사는 최근 소매점의 마진율까지 낮췄다. KT&G는 기존 10%였던 소매점의 마진율을 저가 담배의 경우 7.5%까지 떨어뜨렸다. 중가담배의 소매점 마진율 역시 9.5%로 소폭 낮아진다. 가령 KT&G의 저가담배(4000원) ‘디스’ ‘라일락’ ‘한라산’의 경우 마진율이 지난해 수준(10%)을 유지하면 소매점에 갑당 400원이 떨어지지만 새 마진율(7.5%)을 적용하면 300원으로 줄어든다. 담배업체만 이득을 보는 셈이다.
담배 피는 서민의 등골은 휘는 가운데 세금만 더 걷히고 있는 게 아니다. 담배회사도 덩달아 웃고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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