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담긴 울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가 이미 2년 전 일본어 번역을 마치고도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이 책이 출간되지 않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망언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일본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책이다.[사진=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던 1990년대만 해도 일본정부는 대체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미야자와 총리는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입장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일본정부가 개입돼 있다는 걸 인정한 고노 담화河野 談話(1993년)가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최근 상황은 다르다. 고노 담화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사실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치인들과 일본정부는 전범국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수위도 높이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올해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발언도 나왔다. 고노 담화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4월에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생존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는 이런 일본정부와 정치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구술기록집을 일본어로 번역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 있다.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에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 12명의 이야기, 피해 할머니를 위해 활약한 인권운동가 1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해자들 중 비교적 선명한 기억을 가진 할머니들로부터 나온 얘기들이다. 강제 동원에서부터 귀국까지의 상황, 귀국 후에 겪은 생활고, 신체ㆍ정신적 후유증 등 가급적 ‘일본군 위안부 피해’ 내용 전달에 집중했다. 실명 공개에 동의한 강도아 할머니를 빼고, 나머지 구술자들의 이름은 알파벳 기호로 대체했다.

강도아 할머니의 구술은 이미 「인도네시아 동원 여성명부에 관한 진상조사(2009년)」에 수록된 것 중 주요 내용만 시간 순서대로 다시 추렸다. 강도아 할머니는 장녀로서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에 낯선 모집인을 따라 나섰다가 대만과 인도네시아 발릭파판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들은 “집으로 돈을 부쳐준다”고 했으나 가족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

구술기록집 수록 피해자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동원된 피해자 A◯◯ 할머니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2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이 할머니는 14살에 취업사기로 동원됐다. 나이가 어려서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 일을 여러 차례 진술했다. 부모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남장을 하고, 중국 옌지에서 두달 동안 걸어서 귀국했다.

생생한 위안부 경험담 담아

B◯◯ 할머니는 ‘처녀 공출’을 피하려고 친척집으로 피신했다가 집앞 골목에서 낯선 남자에게 끌려 하얼빈哈爾濱으로 동원됐다. 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 탓에 고생했다는 할머니는 휴일에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군인들의 의복도 수선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피해자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C◯◯ 할머니는 취업사기를 당해 티모르섬으로 동원됐다. 동원지까지 가는 길에 모집인이 사줬던 옷과 밥이 나중에 모두 빚으로 돌아왔다. 함께 있던 여자가 약을 먹고 자살했던 이야기를 하며 “차라리 죽는 게 편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친한 친구가 폭격으로 사망해 마음 아팠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일본군에게 이용만 당했다”고 말했다.

D◯◯ 할머니 역시 취업사기를 당해 싱가포르와 미얀마로 동원됐다. 이 할머니는 주로 불행을 겪었던 동료들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먼저 배를 타고 나갔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친구, 위안부 생활 중에 임신중절 수술을 했거나 아이를 출산한 동료, 마약에 중독된 동료 등이다. 자신도 병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는데, “오히려 그덕에 군인을 상대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일본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은 E◯◯ 할머니는 인도네시아 팔라우와 라바울로 동원됐다. 위안부 생활 도중에 임신을 하면 서 출산까지 겪은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귀국할 때 아이를 업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많이 놀랐다고 전했다.

중국 한커우漢口와 하이난섬海南島으로 동원됐던 F◯◯ 할머니는 귀국해서 가족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 특히 험난했다. 중국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인한 심한 복통과 하혈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에도 계속 복통에 시달리다가 귀국 후 난소에 혹이 생긴 것으로 드러나 큰 수술을 받았다.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왔으나 ‘위안부에 동원됐다’는 소문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혼자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G◯◯ 할머니는 직업소개소에 속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으로 동원됐다. C◯◯ 할머니처럼 이동 중에 지출된 옷값과 밥값 등이 모두 빚으로 돌아왔다. 생활비를 가불해서 쓰자 또 빚더미에 올라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H◯◯ 할머니의 피해사례는 조금 특이했다. 처음 동원됐던 일본 나가사키현에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날짜를 정해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고, 만주로 이동해서는 공장일은 하지 않고 군인만 상대했다. 덕분에 일본과 만주에서의 생활상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I◯◯할머니는 집에 찾아온 낮선 이들에게 강제로 끌려간 사례다. 끌려가는 자신을 붙들던 어머니 모습, 배를 타고 가며 어머니 생각에 울었던 일 등을 애절하게 진술했다.

J◯◯할머니는 부모를 모두 잃고 어린 동생과 친척집에 몸을 의탁하러 가던 중에 돈을 벌 수 있다는 남자들의 꼬임에 빠져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다. 어린 동생을 떼어 놓으며 길을 나섰던 과정, 잦은 폭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전쟁터에서도 오직 동생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살아남아 귀국한 과정을 자세히 들려줬다. 동원 지역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진술내용으로 보면 남태평양의 ‘나우루(現 나우루공화국)’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안부 증언, 일본 정부에 부담

K◯◯할머니는 오랜 시간 침묵해 오다가 2012년에야 여성가족부에 피해자 등록 신청을 했다. 할머니는 사촌과 함께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다가 납치됐다. 만주에서 군인에게 반항하다가 구타를 당해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함께 있던 사촌은 해방 즈음 더욱 난폭해진 군인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고향을 떠나 침묵하며 살았다고 전했다.

이렇게 생생한 경험담이 있지만,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부인하고 있다. 때문에 책임도 회피하고 있다.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일본 내에서도 수차례 강제 동원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나와서다. 일본은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강력한 증인들이 없어지면 일본정부도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에 주는 압박감은 이처럼 크다.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가 하루빨리 일본에 출간ㆍ배포돼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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