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나의 여친」

 
10대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의 모순

자동차를 모두 없애라. 차는 오염물질을 내뿜어 생명체를 위협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일으키니까…. 재활용이니 녹색제품이니, 이런 것들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무언가를 혁신하려면 문제의 근원을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이런 현실감은 없지만 일리 있는 주장을 펼친 주인공은 17살 고등학생 제임스. 카를 마르크스를 숭상하는 그는 가식이 넘치는 세상에 할 말 많다. 특히 현대 문명의 모든 문제가 자동차에서 비롯됐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남몰래 문명의 붕괴를 꿈꾼다. “나는 쉴 새 없이 자동차를 몰고 상점에 가서 쓸데없는 쓰레기를 무한히 사는 게 소비사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이런 단순성을 비난한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은 이런 제임스의 ‘웃픈’ 성장기다. 미국에서 청소년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주목받는 소설가인 저자는 제임스를 통해 모순된 자본주의와 현대인의 속물근성을 꼬집는다. 형식도 독특하다. 주인공 제임스의 일기와 작문과제를 모아 놓은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독자는 10대 자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부모(기성세대)의 입장이 된다.

전 여자 친구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고민도 하는 제임스. 그의 일상은 소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문제투성이, 그래서 더 모순적이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세상은 형편없다. 인간의 탐욕과 무모함이 지구를 망가뜨린다. 사람들은 지구를 오염물질과 쓰레기로 가득 채운다. 그들은 자동차를 몰고 쇼핑몰에 다니기 시작하면 다시는 걸어서는 못 간다.

게을러서 소비문화 속에서 뒹굴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백화점은 쓰레기 천지다. 제임스가 볼 때 세상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라고 묻지도 않는다. 소비사회에서는 생각하는 것이 쓸모없는 쓰레기를 사지 않는 것만큼이나 잘못인 듯하다.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면 문제아가 된다. 반항적이라고 찍힌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자선 사업가들인 ‘활동가 클럽’을 비난한다. 사람들이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내 말을 믿으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제임스는 이렇게 사회 현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삶을 고민한다. 그의 고군분투는 때로 어른을 뜨끔하게 만든다.

이 책은 모순된 사회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시종일관 유쾌하게 풀어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동차를 없애자’는 제임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마냥 코웃음을 칠 수만은 없다. 사춘기 소년의 철없는 생각이라고 하기엔 메시지의 무게가 커서다. 사춘기의 고민은 성숙함을 가져다준다. 삶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물론 세상을 성숙하게 만든다. 엉뚱한 제목의 이 책이 주는 성숙한 교훈이다.
박소현 더스쿠프 기자 psh056@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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