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왕자의 난’ 5대 관전 포인트

롯데가家 ‘왕자의 난’이 장기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전과 주총 대결에 이어 소송전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한국 재벌 오너들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싸움에는 특이한 점이 많다. 전장戰場이 한ㆍ일 양국에 걸쳐 있고 두 형제가 진실 게임을 벌인다는 게 가장 두드러진다. 복더위 속에 연일 핫이슈가 됐던 한국 5대 재벌 롯데家 두 형제의 경영권 다툼을 5대 관전 포인트별로 정리해 본다.

▲ 왼쪽부터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사진=뉴시스]
화산이 폭발할 때도 전조현상이란 게 있다. 가스 분출, 소규모 지진, 온천 활성화 등이 그런 징후들이다. 화산 내부에서 마그마가 이글거리고 꿈틀거려도 겉으로는 별 이상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징후가 나타나도 폭발을 예견하고 대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진 모르겠지만, 한국 5대 재벌 롯데家 오너들의 요즘 경영권 분쟁을 지켜보노라면 ‘화산 폭발 과정’이 생각난다. 마그마처럼 내연內燃을 거듭하던 롯데家 두 왕자의 싸움은 올 초 전조현상을 드러낸 다음 최근 폭발 단계에 접어들었다. 싸움터가 한국과 일본 두 곳으로 분산된 데다 롯데 특유의 전근대적 비밀주의 경영행태 때문에 내연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따름이다.

대표적인 전조현상은 지난 1월 8일 장남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이사직에서 해임된 사건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ㆍ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회사다. 연초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이 사건은 아버지 신격호(93) 총괄회장의 지엄한 뜻에 의한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차남 한국 롯데 신동빈(60) 회장이 한ㆍ일 롯데 통합 후계자 자리에 바짝 다가섰다는 해석이 많았다. 시장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6월 무렵엔 신 회장이 드디어 한ㆍ일 롯데 원톱 체제 구축에 성공한 것으로까지 보도됐다.

하지만 내연과정에 있었던 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7월 15일 차남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된 것을 계기로 폭발 과정에 접어든다(그래픽 참조). 7월 27일 장남 신 전 부회장이 반격에 나서 신동빈 회장 등 롯데홀딩스 이사 6명에 대한 해임을 시도하고 나섰다.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몰래 일본으로 모셔가면서까지 도모했던 이 일은 하루 만에 불발로 끝났다. 오히려 신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가 7월 28일 창업주 신격호의 대표이사직마저 해임하고 나선 것. 신 회장의 궁정 쿠데타로까지 비유됐다. 동생이 ‘형의 반란’을 하루 만에 진압하고 사태를 장악한 형국이 됐다.

하지만 다툼은 친족 간에 복잡한 국면을 연출했고 결과도 속단하기 힘들게 전개됐다. 무엇보다 70년 가까이 한ㆍ일 양국에서 ‘롯데 왕국’을 건설해온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정황情況이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나이로 94세인 그는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도 그런 기대를 갖기 힘들어 보인다. 일각에선 신 총괄회장의 책임론도 제기한다. 전근대적 황제경영에 빠진 나머지 치매 얘기가 나올 때가지 2세 승계 작업을 못 끝내고 실기失機했다는 것이다. 판단력이 흐려진 말년에 두 아들 때문에 스타일을 확 구긴 셈이다.

 
신동빈 日 롯데까지 장악하자 ‘폭발’ 

7월 27일 대폭발에 들어간 이번 사태는 20여일에 걸친 한ㆍ일 장외 여론전과 주총 표 대결(1차로 8월 17일), 소송전 등 장기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3부자 간 극적인 타협 여지도 현재로선 적어 보인다. 신 회장은 11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경영과 가족의 문제는 별도”라며 부친이나 형과의 타협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투는 과정에서 여론과 관계 기관(국회ㆍ국세청ㆍ금융감독원ㆍ공정거래위ㆍ국민연금 등)의 반反롯데 공세가 만만치 않다. 꼬이고 꼬인 롯데家 왕자의 난을 보다 잘 관전觀戰하기 위해 5가지 포인트별로 쟁점을 정리해 본다.

◇ 신격호 치매 정황 = 10일 신 총괄회장이 수년전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은 이래 매일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복수의 롯데 핵심 관계자들이 “3~4년 전 신 총괄회장이 서울 도심의 모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한 것. 이 관계자들은 “의사가 롯데호텔 34층 신 총괄회장 집무실에 와 정기적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안다”며 “신동주ㆍ신동빈ㆍ신영자 등 직계 비속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도 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공개한 신격호의 동영상에서 나타난 어눌한 말씨가 세인들에게는 ‘치매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번 경영권 분쟁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창업주인 그는 아직도 광윤사 등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 지분을 상당히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지분에 입각한 권한 행사와 우호 주주 설득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 치매 진단이 사실일 경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사결정이 법적 효력을 가지는지도 다툼거리가 될 수 있다. 한국 롯데 지배구조는 일본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한국 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이어진다(그래픽 참조).

◇ 롯데홀딩스 주총 대결 =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총이 17일로 전격 결정돼 그 결과가 주목된다. 신 전 부회장이 안건을 들고 소집을 요구하기 전에 신 회장 측이 장악한 롯데홀딩스 이사회가 선제공격에 나선 형국이다. 주총 날짜와 안건을 선점한 것. 안건은 사외이사 선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에 관한 것이다. 당초 예상됐던 ‘신격호 총괄회장 명예회장 추대(신동빈 회장 측 예상 안건)’나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 해임(신동주 전 부회장 측)’ 등은 안건에 없다.

롯데 관계자는 “명예회장직 신설은 정관 변경이 필요 없는 사안으로 확인돼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면 표 대결이 미뤄져 서로 유리한 고지 확보를 위해 시간을 두고 묘수 찾기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 상법상 3%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의 경우 주총에서 직접 안건 상정이 가능하므로 신 전 부회장이 주총에서 반격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3부자 화해 가능성 적어

◇ 3부자 소송전 = 재계는 이번 사태가 결국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져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신 전 부회장은 7일 일본으로 가면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아버지가 동생이 멋대로 L투자회사 대표에 취임한 것이냐며 화를 냈다”는 말도 했다.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대표직에 오른 과정을 놓고 소송을 벌일 생각임을 내비친 것이다. 신 회장이 이들 회사의 대표였던 신 총괄회장 동의 없이 대표에 올랐으니 무효라는 주장.

신 전 부회장은 최근 아버지가 대표이사로 있는 L투자회사 9곳(4, 5, 6 제외)에 대해 일본 법무성에 ‘등기 변경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단독 대표이사 복권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들 회사에는 신 총괄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로 있다가 6월 말 신동빈 회장이 공동 대표이사에 올라 7월 31일자로 등기가 완료됐다고 한다. 당연히 신 회장 측은 이사회를 거친 적법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 관계 기관들의 압박 = 국회와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민연금 등이 롯데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제고를 압박하고 나선 것도 롯데 사태 전개의 새 변수로 등장했다. 이번 사태는 롯데(회사와 오너 일가)의 국적 논란이 전근대적 지배구조, 불투명한 경영행태 등과 결부되면서 광범위하게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특이하게 ‘롯데가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 ‘신격호와 두 아들이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등의 논란까지 벌어졌다. 국제적으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고 있다.

 
신동빈 사과에도 反롯데 기류 여전

사실 롯데를 한국 5대 그룹으로 키워준 것은 소비 대중들이다. 그런데도 오너들이 소비자들이나 시장은 안중에도 없이 전근대적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는 점에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11일 신동빈 회장이 또다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는 한국기업’이며 호텔롯데 기업공개 및 일본계열사 지분 축소, 연말까지 순환출자 80% 해소 등을 약속하고 나온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한ㆍ일 양국에 걸친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경영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경영권 분쟁까지 겪으며 추진하는 일이라 더욱 힘들게 틀림없다. 여ㆍ야당은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소위 롯데법)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국세청은 한ㆍ일 롯데의 과세 현황을 조사하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형국이다.

금융감독원ㆍ공정거래위 등도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 제고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6일 “필요하면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자금흐름을 엄밀히 살펴볼 것”이라며 롯데 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은 롯데 주식 대량 보유 기관으로서 롯데의 경영상 의사결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다. 누가 경영권을 승계하든 제도적으로도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받는 형국이다.

◇ 불매운동 및 反롯데 움직임 = 시민단체나 경제단체 등이 롯데 상품 불매운동, 롯데카드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나선 것도 롯데 사태 진전에 큰 변수로 등장했다. 롯데의 텃밭이었던 부산지역 민심도 싸늘해졌다. 롯데 야구팬들의 반롯데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롯데 자이언츠 대신 부산자이언츠 시민구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그래도 이미지와 실적 추락이 불 보듯 뻔한데 이 같은 조직적인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속이 더 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기회에 한국 소비자들이 봉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가시적인 조치들이 필요해졌다. 롯데는 유통ㆍ관광업 위주의 그룹이어서 어느 그룹보다 소비자들과 가까이 붙어 있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