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먼 소비자가 재벌의 봉인가

인터뷰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법과 제도로 대기업의 불공정 행태를 막을 수 있다면 불매운동은 필요없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롯데의 비상식적 행태를 보며 한 소비자단체가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금융소비자원이다. 그동안 효과가 시원치 않았던 불매운동을 꺼내든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올바른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성패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며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걸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을 통해 롯데의 비상식적 경영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롯데 계열사에 투자했던 국민연금은 수백억원의 손해를 봤다. 재벌의 경영권 분쟁이 국민의 노후자금까지 갉아먹은 거다. 반反롯데 정서가 고개를 들었다. 롯데의 갑질과 골목상권 침해까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금융소비자원은 8월 4일 ‘롯데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이후 각계 시민단체의 롯데 불매운동 선언이 줄을 이었다. 과연 이를 통해 국내 재계서열 5위의 롯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를 만났다.

✚ ‘롯데 불매운동’을 선언한 직접적인 계기는.
“소비자가 손해를 봐서다.”

✚ 어떤 손해를 봤다는 건가.
“롯데 사태는 단순히 경영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아니다. 롯데는 불공정경쟁뿐만 아니라 황제경영과 비밀경영 등으로 시장 질서를 해쳤다. 소비자가 더 싼 값에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고를 기회를 뺏었고, 투자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손실을 안겨줬다.”

✚ 이번 불매운동으로 애먼 협력사와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되묻겠다. 소비자는 손해만 보고 있어야 하나. 물론 협력사 등이 당장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롯데의 행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불매운동을 계기로 기업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게 협력사나 노동자에게 유익할 수도 있다.”

✚ 불매운동이 긍정적이라는 건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불매운동은 차선책일 뿐이다. 사실 재벌 대기업의 불공정 행태는 얼마든지 법과 제도로 개선할 수 있다. 잘못된 게 있으면 법과 원칙대로 적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소비자들이 나서는 거다. ”

✚ 크고 작은 논란을 빚은 삼성의 합병에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굳이 롯데’라는 눈초리가 나올 수도 있다.
“사실 삼성이나 롯데나 행태는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롯데보다 삼성이 더 심각하다. 다만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삼성의 합병 문제는 불매운동으로 이어가기엔 명분이 약했다. 소비자의 역량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의 경우 불매운동을 할 수 있는 제품은 TV나 휴대전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교체 주기가 최소 2~3년이다. 반면 롯데에는 생필품들이 많다. 불매운동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 불매운동이 큰 성과를 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 그동안 법과 질서를 안 지키고, 편법을 쓰고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이들이 늘 득을 봤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옳고 그름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소비자가 제 역할을 하려면 이런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불매운동 자체가 이런 사회구조 변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떠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하는 거다.”

✚ 롯데가 얼마나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시장으로부터 신뢰받을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롯데를 비롯해 협력사, 납품업체 직원들이 의미 있는 변화라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롯데의 행동이 가식적인 것인지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신동빈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부터 갑질 문제 개선까지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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