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시장역에 공항시장 없는 이유

서울 강서구에 있는 공항시장. 김포공항이 한창 잘나가던 1990년대 이 시장은 강서ㆍ부천ㆍ김포ㆍ양천을 아우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인근에 둥지를 틀면서 힘이 빠지더니, 지금은 명맥이 끊길 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라져가는 공항시장을 취재했다.

▲ 대기업이 상권을 잠식하는 사이 유명 재래시장이던 '공항시장'은 폐허가 됐다.[사진=지정훈 기자]
2009년 7월 24일. 지하철 9호선 공항시장역이 문을 열었다. ‘공항시장’이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단 이유는 간단하다. 역 바로 앞에 강서구의 명물 공항시장이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이 붐비는 재래시장이었다. 지하철 5호선, 시내버스 등과 연결되는 접근성 덕분에 강서ㆍ부천ㆍ김포ㆍ양천을 아우를 수 있었다.

이 시장에 손님의 발걸음이 뜸해진 건 2001년 인천공항이 개항하면서다. 김포공항의 기능이 줄어들면서 공항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신세계그룹이 국내 첫 교외형 쇼핑센터인 ‘이마트 김포공항점’을 열면서 공항시장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이마트가 그 많던 손님을 블랙홀처럼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동주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형마트의 입점이 잘나가던 재래시장에게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며 “당시 공항시장 상인들도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마트가 빠르게 지역상권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면적만 2만3140㎡(약 7000평)에 달했으니, 재래시장으로선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인테리어 전문점, 동물병원, 어린이 전용사진관, 게임룸, 식당 등 없는 게 없었다. 이마트가 개점 이후 10년 가까이 연 1000억원대 중반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이마트가 승승장구할수록 공항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2009년 7월 반전을 꾀할 수 있는 호재가 생겼다. 9호선 ‘공항시장역’이 개통한 것이다. 공항시장 상인을 포함한 인근 주민들은 기대를 갖고 시장의 부흥을 꿈꿨다. 하지만 ‘역세권’이라는 대형 호재를 덮는 무서운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12월 초대형 복합쇼핑몰 롯데몰 김포공항점이 문을 연 것이다. 롯데몰은 시장 상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카운터펀치’였다. 지상 9층에서 지하 5층까지 연면적 31만4000㎡(9만5000평) 규모의 이 쇼핑몰은 주변 상권을 휩쓸었다.

대형마트에 뺨맞은 상인들

인근에 있던 이마트의 매출도 2013년 960억원으로 떨어질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반면 롯데몰 내부에 있는 롯데마트는 이마트 매장 규모 절반에 불과했음에도 9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실상 이마트의 참패였다. 결국 이마트도 지난해 9월 문을 닫았다.

두 유통공룡이 출혈경쟁을 하는 사이 공항시장의 상권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마트와 롯데몰이 입점할 때 공항시장과 상생협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형마트를 규제할 수단이 없었던 것도 공항시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시장 상인 관계자는 “이마트가 퇴점을 앞둔 지난해 이미 300여개의 시장 점포가 짐을 싸고 나갔다”며 “무엇보다 롯데몰의 위치가 공항시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불과하다는 게 치명타였다”고 회상했다.

공항시장이 몰락하는 동안 시장 부지 소유주들은 재개발을 추진했다. 근거는 시장 기능 현대화를 위해 2000년 지정된 ‘공항지구중심상세계획(지구단위계획)’이었다. 2006년에는 ‘공항시장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이하 공항시장 정비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회는 2012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개발 계획을 제출했다. 내용은 6만6000㎡(약 2만평) 규모 주상복합 모델의 재정비 사업이었다. 건물 상층부에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하층부에는 상가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공항시장 정비위원회가 제출한 세차례 계획서를 모두 반려했다. 시장개발구역(13%)보다 인접지역(87%)의 범위가 넓다는 게 반려 이유였다. 국제공항 때문에 발생하는 고도제한도 거림돌로 작용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활주로 반경 내 4㎞ 이내는 해발 57.86m 미만으로 고도를 제한하고 있다.

강서구청과 공항시장 정비위원회는 서울시를 설득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공항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지역인 만큼 개별건축이 어려웠다”며 “특히 공항시장과 주변지역에는 노후 불량 건축물이 많아 화재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어 재개발이 시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 전통시장이 대형 유통채널과 경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사진=뉴시스]
2년이 넘는 설전 끝에 서울시는 주요 쟁점이던 ‘인접지역 통합개발 방식’을 수용하고 조합설립인가를 승인했다. 대신 진출입로 및 공공보행로 선형조정, 지하철 출입구 공간확보 등을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부진하던 사업이 탄력을 받는 순간이었다. 공항시장 정비위원회는 올해 5월 시공사를 대림산업으로 선정했다. 이르면 내년 1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계획대로만 되면 2017년에는 착공이 가능하다는 게 공항시장 정비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9년의 긴 기다림 끝에 공항시장 재건축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건물형 시장이 전통시장?

문제는 이런 재개발 과정에서도 공항시장이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하층부에 들어서는 상가가 건물형 시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동주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주상복합 건물에 있는 상가를 ‘시장’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다”면서 “재개발이 돈의 논리를 따라가는 사이 서민의 공간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재개발을 통해 공항시장이 부활할 지도 모른다. 건물형 시장이 히트를 칠 공산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전통시장은 분명 아닐 게다. 재개발 과정에 참여한 공항시장 상인도 전무하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거나 몸이 불편한데, 그런 논의를 할 수 있겠는가. 9호선 공항시장역에서 공항시장은 사실상 사라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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