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괴물 ❷

▲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법, 국가, 돈보다 상위에 놓인 최상위의 이념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단순한 명제를 인정한다면 영화 ‘괴물’이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괴물’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대표 메뉴인 비빔밥을 닮았다. 비빔밥처럼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렸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의 막연한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괴수가 등장하고, 환경오염과 정체 모를 질병의 두려움이 깔리고, 주한미군의 양면성을 건드리고, 공포와 무참한 죽음 속에는 코믹코드가 있다. ‘셰프’ 봉준호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비빔밥 1200만 그릇을 팔아치운 셈이다.

비빔밥은 실로 우리만의 놀라운 메뉴다. 우리는 수많은 이질적인 식자재들을 한데 모아 뒤섞어 놓고 미각을 마비시킬 것 같은 고추장으로 비비는데도 그 하나하나 고유의 식자재 맛을 구분해 즐긴다. 개별적인 맛들이 어우러져 내는 신묘한 맛까지 탐지해 낸다. 사시미 쪼가리를 한번에 한가지씩밖에 먹을 줄 모르는 이웃 섬나라의 한심한 미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빔밥의 식자재가 무엇이든 비빔밥에 빠질 수 없는 게 잘 다진 불고기라면, 영화 ‘괴물’의 흥행을 완성해 주는 불고기는 ‘가족’이라는 ‘이념’이 아닐까 한다. 가족은 한국인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이며 최상위의 이념이기도 하다.

구닥다리 휴대전화를 부끄러워하는 중학생 외동딸 현서(고아성)에게 최신형을 사주기 위해 아버지 박강두(송강호)는 비자금 조성에 나선다. 박강두는 자신의 근무지인 한강 둔치 매점의 매출에서 몇백원씩 횡령해 컵라면 용기를 한가득 채운 비자금을 현서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매점 직원 박강두는 대단히 불성실하지만 아버지로서는 그보다 더 성실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무수한 박강두는 법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거나 갈등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법도 무시한다. 우리 사회의 강고한 국가주의도 무력하다. 법 없이 살 것 같은 박강두의 가족은 국가가 가족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자 국가와 정면 대결할 태세를 갖춘다. 법치주의와 국가주의 위에 ‘가족주의’가 있다.

한강둔치를 초토화한 괴물이 그냥 가기 섭섭했는지 현서를 꼬리에 감고 한강 속으로 사라지고 족히 수십명은 됨직한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다. 대형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현서의 영정 앞에서 할아버지(변희봉)와 아버지 박강두는 넋을 놓고 있다. 양궁대회에서 곧바로 달려온 트레이닝복 차림의 고모(배두나)가 영정을 쓰다듬자 슬픔이 본격적으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어 사회에 대한 감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고학력 실업자 삼촌(박해일)이 소주병을 불며 나타나니 가족이 완성되고, 그들의 슬픔도 완성된다. 네 가족은 벌렁 드러누워 버둥대며 슬픔을 발산한다. 기쁨도 슬픔도 가족이 있어야 완성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개탄해 마지않는 개인주의도 가족주의는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  박강두의 가족은 현서의 구출이라는 대단히 불확실한 일에 전 재산을 ‘올인’한다. 이처럼 합리주의를 비웃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지워버릴 수 있는 유일한 이념이 가족주의다.

▲ 영화 ‘괴물’은 우리 사회에 가족이 어떤 의미로 작동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괴물과 1대1로 맞선 순간에 셈이 분명치 못한 아들 박강두에게 건네받은 엽총이 총알 없는 빈 총이라는 것을 확인한 할아버지가 말 없이 돌아보는 표정은 압권이다. 체념과 슬픔, 안타까움이 교차할 뿐 원망이나 질책은 없다. 우리의 모든 아버지가 가족을 바라보는 얼굴이기도 하다.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빨리 도망치라는 힘 없는 손짓 하나를 남기고 괴물 꼬리에 감겨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쳐진다.

우리의 ‘가족주의’는 모든 허접한 ‘이념’을 초월한다. 가족 덕분에 살고, 가족 때문에 죽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성전과도 같은 가족이 점점 해체되고 무너지고 있다. 결혼과 출산 자체를 망설이고 어찌어찌 이룬 가정도 세계 최고의 이혼율이 위협한다. ‘가족주의’라는 우리의 핵심 이념이 사라진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또 다른 ‘이념’이 과연 있을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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