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가능한가

▲ 국가가 어린이 병원비를 책임지는 게 성금 모금과 민간보험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사진=뉴시스]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을 돕는 성금모금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든 적 없는가. 아이들 병원비가 얼마나 되기에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못 받는지 말이다. 돈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6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 이 돈을 쓰면 어떨까.

“○○이가 맘 놓고 뛰어놀 수 있게 도와주세요.” 병원에 누워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는 아이가 TV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이의 딱한 사정이 속속 공개된다. 부모는 아파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거나 일을 해도 저임금 노동자다. 간혹 할머니가 등장하기도 한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형편은 모두 공개된다. 부끄럽기보다는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의 병을 고쳐주고 싶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성금모금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요즘은 구호단체의 인터넷 사이트나 소셜펀딩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이런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차원에서 성금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나타나 주기만을 기다리는 게 능사일까. 더구나 성금모금 프로젝트는 한계가 뚜렷하다. 취지는 좋지만 사생활 공개로 인해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부양자의 부끄러움과 고통이 아이에게 전달될 공산도 크다.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료패널 자료에 따르면 10세 미만 어린이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84.9%(2014년 기준)다. 전체 연령대 평균 가입률(74.3%)을 웃돈다. 월평균 보험료는 4만8429원이다. 전체 가구 평균(8만3854원)의 절반을 넘는다. 10세 미만 어린이가 459만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10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가 매년 2조2647억원(4만8429원×495만명×84.9%)의 돈을 자녀의 민간의료보험비로 쏟아 붓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0세 미만 어린이의 병원비 총액(3조8383억원ㆍ2014년 기준) 가운데 본인부담금은 1조8051억원(건강보험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9990억원 포함)에 불과하다. 따져 보면, 실제 병원비보다 2.1배 많은 민간보험료를 내고 있는 셈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낮은 비효율적인 구조다. 아이들의 건강을 민간보험사에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아이들의 병원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주장을 내놓은 곳은 지난 2월 2일 57개 시민단체가 모여 출범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어린이병원비연대)’다. 이명묵 어린이병원비연대 집행위원장(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은 “연말이면 으레 불우이웃돕기 모금행사가 펼쳐지고, 난치성질환을 가진 아이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영상으로 모금을 호소하는 상황은 몇십년이 지나도 똑같다”면서 “어린이가 안전한 나라, 어린이 병원비 걱정으로 보험회사에 볼모로 잡힌 부모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 무상의료 돈 없어서 못하나

어린이 병원비 보장의 핵심은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돌리고, 법정 본인부담금을 없애는 거다. 전면적인 시행에 앞서 전체 어린이 병원비 중 15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가장 큰 부담인 입원비부터 줄여주자는 게 1차 목표다. 15세 이하 어린이의 총 입원진료비는 1조7053억원이다. 이 중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5152억원(법정 본인부담 1306억원+비급여 본인부담 3846억원)이다. 이 돈만 있으면 부모들이 아이들 병원비 때문에 입원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은 돈이 문제다. 수천억원의 돈을 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험료를 굳이 올리지 않아도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천문학적인 흑자를 내고 있어서다. 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단의 흑자 규모는 약 16조9779억원으로 2019년에는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보장률이 줄어든 탓이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지난 2009년 65.0%에서 지난해 62.7%로 매년 감소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흑자 재원을 쓸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매년 지출액의 5%를 당해 연도 지출액의 절반에 달할 때까지 적립하도록 돼 있다”면서 “급격한 의료비 지출이 있을 때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적 흑자 규모가 많다는 지적이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며 “향후 급속한 고령화가 예상되는 만큼 적립금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단의 주장에 어폐가 있다는 점이다. 2007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공단은 정부로부터 매년 예상 수입의 20%를 지원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재 국고지원비율은 16%에 불과한 수준이다. 흑자를 기록 중인 공단에 국고를 지원한다는 게 법의 취지에 맞지 않아서다. 이는 공단의 흑자를 어린이 병원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어폐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단은 적립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운영비는 매년 오름세다. 특히 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지난 2014년 5870만원에서 지난해 6259만원으로 6.6%나 올랐다. 적립금이 모자라다면서 직원 임금은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건강 뒷전인 정부 의료정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임상시험 규제완화 계획’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안案이 포함돼 있고, 안정성과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에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면서 “국민이 낸 보험료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지출하는 데는 인색한 정부가 의료산업화 관련 정책 지원에는 적극적”이라고 꼬집었다.

오 대표는 “아이를 살리고 싶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와주세요’를 외쳐야 하는 나라에서 최고의 의료서비스가 나온 들 무슨 소용일지 반문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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