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공세가] “우리에겐 판옥대맹선 13척 있소이다”
[이순신공세가] “우리에겐 판옥대맹선 13척 있소이다”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 호수 179
  • 승인 2016.03.0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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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2

이순신은 칼을 빼어 들고 배설 이하 제장에게 적선을 맞아 싸울 것을 명하고 스스로 선봉에 섰다. 탄우와 포연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하여 포를 쏘며 돌진을 하였던 거다. 순신의 장령을 어기지 못한 배설도 대장선의 뒤를 따라 진격하였다. 명량대첩, 그 서막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이순신은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진군하라.”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배에 올랐다. 배설도 그랬다. 배는 초라했다. 판옥대맹선이 합 13척이요, 탄 장졸이 이순신 이하로 2000인에 불과하였다.

임진년 이래 6년 동안 이순신이 힘을 쏟아부어 건조한 병선 1000척은 원균의 잘못으로 모조리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전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적선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신은 김억추에게 밀령을 내려 명량해협 밑을 가로질러 철삭을 놓게 했다. 명량의 안목 바깥목 두 군데를 택해 조류가 가장 급한 여울목에 쇠사슬을 걸고 남쪽 언덕에 기계를 설치해 감아올리거나 풀 수 있게 했다.

그 무렵, 경상우수사 배설이 순신에게 진언했다. “적선 300여척이 이진에까지 왔다한즉 어떻게 싸운단 말이오?” 이순신은 답했다. “물은 흙으로 막고 병사는 장수로 감당하는 법이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소? 싸워서 깨뜨릴 것이지!”

배설은 순신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적선도 무서웠지만 순신은 더더욱 무서웠다. 배설의 음성은 떨렸다. “13척밖에 안 되는 배로 300척의 적선과 맞서 어떻게 싸운단 말씀이오?” 순신은 답했다. “그러면 영감은 어디로 피하자는 말이오? 내가 있으니 염려 마오.” 배설은 한참 묵묵하다가 대꾸하기를 “장수의 영을 어찌 피할 수 있겠소…”라면서 물러났다.

배설의 마음에는 오직 ‘이 죽을 곳을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뿐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의 꿈쩍도 않는 태도를 원망하였다. 8월 28일에 과연 적의 선봉선이 어란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이순신의 13척 전선에 탄 장졸들 중에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모두 겁을 내어 당황하거나 분주했다.

이순신은 칼을 빼어 들고 배설 이하 제장에게 적선을 맞아 싸울 것을 명하고 스스로 선봉에 섰다. 탄우와 포연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하여 포를 쏘며 돌진했던 거다. 순신의 장령을 어기지 못한 배설도 대장선의 뒤를 따라 진격하였다.

그러하여 순신의 함대가 풍우같이 공격하는 바람에 적선은 많은 손해를 입어 예기가 꺾였다. 순신의 함대는 갈두(땅끝마을) 끝까지 추격하다가 순신은 쇠를 울려 군을 거두었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적의 선봉이 어란진에 우리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갔다. 반드시 주력함대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할 것이다.”

▲ 이순신이 칼을 빼어 들고 배어 올랐다. 전선은 13척뿐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은 유인책을 썼다. 전 함대를 몰고 장도獐島로 진을 옮겼다가 그 이튿날 진도군 벽파진으로, 다음엔 서쪽으로 적을 유인하는 듯이 물러나고 또 물러나서 진을 쳤다. 벽파진은 진도의 동쪽 끝에 있어 그 안에 능히 수십척의 배를 숨길 수 있었다. 이곳에서 20리만 나가면 명량이라는 해협이 있었고, 그 해협을 지나면 전라우수영이 있었다.

이 해협은 어구가 심히 좁고 조수가 급하게 흘렀다. 물 밑에는 큰 바위가 있어 문지방 역할을 했다. 조수가 빠지면 여울이 되어 물결이 험악한 곳이었다. 이 명량 울돌목을 경유하는 조수는 목포 앞바다로 들고 나고 한다. 하루 네 차례로 조수가 소리를 악악 지르고 물결이 한길이 넘게 언덕을 이룬다. 이 때문에 배가 왕래할 수 없는 시간이 하루에 네번이나 된다. 이순신이 명량해협 밑에 쇠사슬을 설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두줄의 철삭을 군사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었던 거다.

그 무렵이었다. “우리 이순신 장군이 간신의 모함에 죽지 않고 다시 나타나 벽파진에 와서 적을 막는다”는 소식을 들은 어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수없는 적선이 질풍같이 바다를 덮어 몰려온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이들은 이순신의 위대하고 너그러운 날개 밑에서 살길을 찾으려 했다. 이순신은 천신天神이나 다름없으니 최후의 승리를 얻어 자신들을 살려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9월 2일 새벽에 경상우수사 배설이 배를 버리고 도주하였다. 배설은 이순신이 제아무리 귀신 같은 전략을 펴도 적의 대세력 앞에서 전멸할 것으로 짐작했다. 이억기, 이운룡 같은 명장을 거느리고, 병선도 수백척이 있었건만 원균이 칠천도 일전에 전멸한 것처럼 이순신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거다. 하긴 13척의 병선을 가진 이순신이 일본 적선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드디어 명량해전의 막이 올랐다. 이순신은 각 전선에 대기명령을 내리고 피난하는 민선에는 경동치 말고 멀찍이 있어 의병疑兵 모양으로 가만히 떠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절도 있게 진퇴하라고 하였다.

배설은 자기의 병선도 군사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였다. 이는 삼군의 장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새로 온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경험이 일천하다는 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순신이 군사상 전략을 이야기해도 김억추는 잘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겁 먹은 군사 대신 선봉에 서다

어찌 됐든 55척이나 되는 적선이 쳐들온다는 말을 들은 군사들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적선 13척이 벽파진을 향하여 포를 쏘고 달려든다. 순신은 전함대에 출동하여 맞아 싸우라고 명하고 스스로 선봉이 되어 최전선으로 나섰다. 겁을 내는 각선의 용기를 고무시키기 위해서였다. 순신이 탄 기함의 각양 대포는 적에게 많은 손해를 주었다. 적은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며 각양 대포를 놓고 내닫는 이유가 의병으로 보이는 민선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얼마 싸우지도 못한 채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순신의 계략대로 적들은 민선을 보고 의병이라 여긴 거였다. 순신은 부하 각선을 몰고 추격하다가 바람과 조수가 다 거슬러 올 때에 군을 거두어 벽파진으로 돌아왔다. 피난민들은 순신이 적을 쳐 물리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춤추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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