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ㆍ양신ㆍ간신 감별법

▲ 4ㆍ13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사진은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왼쪽)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사진=뉴시스]
직언으로 유명한 재상 위징이 당 태종에게 아뢴다. “저를 양신良臣이 되게 하시고, 충신忠臣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태종이 놀라 곧바로 물었다. “대체 충신과 양신의 차이가 무언가” “차이가 아주 큽니다. 양신은 군주를 거룩한 천자라는 칭호를 받게 하고, 스스로 후세에 추앙되는 이름을 얻습니다. 하지만 충신은 결국 미움을 사 자신은 물론 일족이 모두 몰살당합니다. 그 군주는 폭군이란 악명을 얻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충신이었다는 이름만 후세에 전해질 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조직이나 충신 양신 간신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분별할 능력이 없다. 정권이 붕괴되고, 기업이 망하고, 지도자가 큰 화를 입는 것도 따지고 보면 리더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한 탓이 크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충신 양신 간신의 감별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떠날 때 마무리를 멋지게 하는 사람은 양신이고, 충신은 조직에 충성한다는 미명으로 자신이 모시던 지도자와 조직을 욕보인다. 간신은 끊임없이 조직을 흔들며 잇속을 챙기다가 쫓겨나자마자 근무 중 알게 된 비밀을 무기로 협박하며 큰 피해를 준다.

4ㆍ13 총선을 앞두고 떠나야 할 운명을 맞이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과감한 물갈이에는 모두 박수치며 환영하지만, 정작 수건돌리기 게임에서 자신이 술래가 되는 순간엔 분노로 바뀐다. 70세가 넘은 다선의 국회의원이 공천을 못 받았다고 몸담았던 정당에 저주를 퍼붓는다. 전직 총리를 지낸 6선의 야당인사는 정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로 분노를 표현한다. 공천에 떨어졌다고 종교단체를 동원해 압력을 행사하는 뻔뻔한 의원도 있다. 의리도 없고, 이념과 정파도 없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자존심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마누라가 그만두라고 했을 때 진작 그만뒀어야 하는 건데…”라며 너스레를 떨며 떠난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넉넉함에 한자락 위안을 얻는다.

롯데그룹 형제간 분쟁도 따지고 보면 창업자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떠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다. 올해 95세인 창업자는 어느 임원이 “회장님 100세까지 장수하십시오”라고 인사하자 “120세는 끄떡없는데 무슨 말이냐”며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어느 대그룹 회장은 아들(부회장)을 제치고 중요한 결정을 다한다. 물론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가 있기는 하지만, 가끔 엉뚱한 데로 흐르니 문제다. 회사돈을 엉뚱한 부동산 투자 대신 인재양성과 기술개발에 써야한다고 그룹 내에서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요즘 잘나가는 70대 후반의 어느 건설사 회장은 서울 4대문 안 유명빌딩은 물론 지방의 부도난 휴양시설까지 마구 사들이고 있다. 회사 임원들은 소액 지출까지 직접 결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회장이 자칫 판단력이 흐려지면 큰 위기가 올 것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그의 독불장군식 경영으로 자식은 물론 회사 내에서 2인자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에서는 개선행진을 하는 장군 뒤에 노예 한명을 세워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개선장군들이 빈번하게 쿠데타를 일으키자 ‘너무 우쭐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으로 복창하게 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오늘은 네가 죽고, 내일은 내가 죽는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들이 갈망하던 내일이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르게 해준 신神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과 대국에서 3패 후 첫 승리하자 국민들은 외환위기 당시 박세리 선수가 LPGA 대회에서 바지를 걷고 해저드에 들어가 승리를 낚아챌 때의 감격을 기억했다. 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인공지능과의 불공정한 대결인데도 이세돌 9단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조 단위의 가치가 있는 비즈니스를 단돈 1억8700만원의 대국료를 받았으니 화가 나고 억울해할 만한데도 그는 시종일관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로 돌을 놓았다. 그는 패배의 이유를 “실력 부족”이라고 했고, “인간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세돌은 졌지만, 지지 않았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짜 멋진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탐욕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끊임없이 성찰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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