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위한 나라는 없다

▲ 유대인이 경제적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은퇴 터부시’다.[사진=아이클릭아트]

소년 출세出世, 중년 상처喪妻, 노년 무전無錢. 흔히 말하는 세대별 고달픈 인생의 세 가지 유형이다. 개인의 성공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젊어서 거둔 성공이다. 대부분 화려했던 과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차라리 실패를 밥 먹 듯하더라도 대기만성형이 훨씬 낫다. 중년에 갑자기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면 재앙과 다름없다. 재혼해도 자칫하면 가정불화로 이어져 인생후반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노년에 빈털터리로 전락하면 그야말로 출구가 없다. 자식에게 외면당하고, 친구들과 멀어져 여생이 초라해진다. 이제 인생경영의 성적표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이나 드라마나 대미大尾가 중요하다.

요즘 일본에서는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NHK스페셜 제작팀 저)」이라는 책이 관심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던 고령자가 질병이나 부상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작은 사건을 계기로 파산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노후파산의 공포는 서서히 옥죄어 오기 때문에 죽음보다 두렵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자식을 연금패러사이트(기생충)라고 부른다. 이런 가정에서 부모가 노후파산에 처하면 자칫 두 세대가 공멸할 수 있다.

정작 일본보다 한국이 걱정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섰다. 늘어난 수명은 가히 신의 축복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미국 통계국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인 인구가 많은 나라(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 35.9%)가 될 전망이지만 돈이 없고, 일자리가 적으니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후 수입에서 연금비중이 13%에 불과하다.

노후파산에 이르는 건 조기 은퇴나 사업실패, 가족해체, 사기피해, 의료비 부담, 자식(손자)부양, 창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 문제다. 조기은퇴는 가정은 물론 국가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다. 히브리어에는 ‘우연’과 ‘은퇴’라는 단어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숨쉬고,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은퇴’라는 개념이 없다. 유대인에게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준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은퇴를 터부시해온 데 있다.

필자의 동창생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공제회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해기사 자격증을 따 항해사로 변신했다. 비록 작은 배를 타고 연안을 누비지만 그를 만나면 의욕이 넘친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은행 고위간부가 자신이 근무하던 은행점포에 경비원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체면 때문에 빈둥거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같은 저금리시대에는 허드렛일을 해서 월 100만원을 번다면 은행에 10억원 정기예금을 가입한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인생에서 세 번의 정년을 맞는다. 제1의 정년은 타인이 정년을 결정하는 ‘고용정년’이고, 제2의 정년은 자신이 정하는 ‘일의 정년’이며, 제3의 정년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떠나는 ‘인생정년’이다. 노후를 돈으로만 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힘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지, 어느 순간 은퇴할 것을 가정해 목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투기성 재테크에 연연하기보다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인생을 올바로 살아가는 지혜다. 선진국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인생 후반설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한다. 노후자금 마련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인생설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내놓는 일자리 만들기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인 스스로 은퇴를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는 자세가 중요하다.

때때로 여행은 목적지가 그 목적지에 가는 과정만 못할 때가 있다. 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흥미진진한 인생이라는 여행을 중도에 끝내려 하는가.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늘 기대를 갖고 여행을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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