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 일본 청년 vs 2016 한국 청년

▲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의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우리나라가 20년 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말한다. 가깝지만 먼 일본과의 이런 비교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회 지표 곳곳에서 그런 흔적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불황인 경제상황, 갈수록 치솟는 청년실업이 그렇다. 1993년 일본 청년과 2016년 우리 청년의 현주소를 비교했다.

# 청년 A씨. 그는 몇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낮에는 패스트푸드점,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한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선택한 삶이 아니다. ‘안정적인 정규직’을 갖고 싶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A씨는 지금 타의로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고 있다.

# 청년 B씨. 지난해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휴학을 한 탓에 동기들보다 졸업이 늦었다. 하지만 취업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합격해 출근하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연봉도 적고 적성도 맞지 않아 그만뒀다. 대학원에 진학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석사학위를 받아봤자 뾰족한 수가 보일 거 같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집에서 취업준비를 하기로 했다.

자, 당신이 보기에 A씨와 B씨는 어떤가. A씨와 B씨는 청년실업자들이다. 전자는 피동被動적 알바생이다. 후자는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취업 준비를 했지만 현재 무직 상태다. 언뜻 보기에 다른 듯 닮은 A씨와 B씨는 1990년대의 일본 청년과 2016년 우리 청년의 모습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 문제와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일본과 20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청년실업률 역시 마찬가지다. 20년 전 일본도 지금의 우리처럼 청년실업률이 상승했다.

일본은 1985년 엔고에 따른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내놨다가 부동산 버블로 땅값과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했다. 금융권의 위기는 기업을 압박했다. 이 시기에 일본 기업들은 ‘부실채권 증가’와 ‘매출 정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일본 전체 기업의 매출증가율은 1992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후 무려 12년 동안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오락가락했다.

이는 결국 불안정한 고용으로 이어졌다. 청년층 고용에도 큰 타격을 안겼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1993년 상승하기 시작한 청년실업률은 2002년에 급기야 10%대(10.1%)를 넘어섰다. 전체 실업률과의 격차도 갈수록 커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2%대 초반이었지만 1993년 이후에는 전체 실업률과 청년실업률 차이가 4.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日 버블 붕괴 후 청년 고용에 타격

보고서는 1990년대 일본 청년실업률이 증가한 원인을 ‘프리터족’과 ‘니트족’의 증가에서 찾고 있다. 프리터(freeter)족은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말로 15~34세의 남녀 중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뜻한다. 니트(NEET)족은 취업 의사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 청년무직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모두 안정된 울타리에 소속되지 못한 청년이라는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10%대를 넘어서며 정점을 찍은 일본의 청년실업률(15~24세)은 2002년 이후 하락세를 보였다. 전체 실업률과의 격차도 줄었다. 올 1월에는 전체 실업률(3.2%)과 청년실업률(5.0%) 차이가 1.8%포인트로 줄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양적 개선은 됐을지 몰라도 질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청년 고용의 질이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거다. 고용의 질을 포기한 청년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일자리에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프리터족과 니트족 대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상당기간 청년실업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상황은 1990년대의 일본보다 심각하다. 지난 2월 전체 실업률은 4.9%였다. 그런데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2.5%를 기록했다. 격차가 무려 7.6%포인트에 이른다. 각각 3.7%, 9.5%를 기록해 5.8%포인트 차이가 났던 1월보다 편차가 더 벌어졌다.

일본은 장기침체에 접어들면서 10년 넘게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면 우리 역시 앞으로 상당기간 청년실업 문제를 떠안아야 한다. 이영면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답이 있는데 못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다는 게 큰일”이라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를 우려했다.

그는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수년째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2~3년은 지금보다 안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 기업, 청년 중 누구 하나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모두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답을 못 찾는 게 아니라 답이 없다”

우울한 현재를 반영하는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 등 늘어나는 신조어가 한동안은 계속 쏟아질 공산이 크다. 1990년대 일본 청년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년 넘게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