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청년층의 실업 체감온도 달라

아픈 곳을 알아야 처방전이 나온다. 처방전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런 간단한 논리가 잘 먹히지 않는 영역이 있다. ‘청년실업’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철만 되면 내놓는 청년실업 대책에 청년층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다. 이번 총선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를 위한 공약이냐’고 되묻는 청년층이 많다.

▲ 청년실업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사진=뉴시스]
청년고용률 41.1%와 청년실업률 11.1%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최고치다. 정규직 전환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인 22.4%다. 청년실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마저도 청년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고용률에는 고용형태가 나타나지 않고 실업률에는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택한 여성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아서다. 그래서 청년이 느끼는 현실은 더 어둡고 팍팍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청년 관련 공약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타개하겠다고 나섰다. 청년아카데미 확대, 벤처장학제도, 국제인턴 확대, 청년예술가 지원 등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 공약들이다. 기업에서 현장 경험을 쌓아 취업까지 보장하는 것이 공약의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경찰ㆍ소방ㆍ교사 등 공공기관의 일자리를 늘리고 정규직 전환ㆍ신산업 확대를 통해 총 7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국민의당은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내세웠다. 구직자 인권보장 관련 조항을 신설해 채용풍토를 개선하고, 근로기준법 교육을 강화해 청년 노동착취를 방지하겠다는 거다. 공정임금제를 도입해 임금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정의당은 ‘차별 없는 고용’을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 여성ㆍ고졸자ㆍ지방대 출신 등에 채용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출신대학ㆍ지역ㆍ사진을 배제하는 표준이력서 사용 의무화를 약속했다. 채용기준뿐만 아니라 절차와 결과도 투명화하겠다고 밝혔다. 각 정당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공약도 있다. 정당별로 명칭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소위 취업활동지원금은 4개 정당이 모두 내놓았다. 그중 국민의당만 후납형 지원인 점이 특징이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야권 3당은 청년고용의무할당제 확대안案을 내걸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구체적인 창업 지원책도 마련했다.

이처럼 각 정당의 노선이 분명한 공약도 있지만 대동소이한 공약도 상당수에 달했다. 양을 불리기 위한 공약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각 정당이 내건 공약들은 청년층에 별다른 반응을 주지 못하고 있다. 김미진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정책실장은 “청년실업에 대해 당사자가 느끼는 체감온도와 정당이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소 다르다”면서 “정당이 내놓은 공약은 거대담론일 뿐 구체적인 정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일례로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걸 꺼리는 이유는 근무환경과 임금격차에 있다”면서 “그저 고용률을 올리기 위한 취업 연계나 지원이 아닌 중소기업의 근무환경을 개선해 주려는 노력이 우선이다”고 덧붙였다. 창업 지원책이 IT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 중에는 오히려 음식업이나 서비스업 등의 비중이 더 높다는 얘기다. 누구의 실리를 따진 공약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는 “정치권이 청년실업에 관심을 쏟고 있는 건 분명 긍정적이지만 공약을 보면 현실과의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실리지 않은 탓에 청년 공약들이 외면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총선ㆍ대선 때마다 비슷한 공약이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구직자의 인권을 신장하겠다는 공약이 많은 청년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거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금방 식어버리는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라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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