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세 군불 누가 때나

설탕세 논란이 뜨겁다. 영국에서 설탕세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여론도 들끓었다. 하지만 설탕세가 서민증세의 또 다른 이름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채우려고 여론의 간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설탕세, 어떻게 봐야 할까.

▲ 질병을 줄여야 하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설탕세는 이런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설탕과의 전쟁을 치르던 영국 정부가 ‘세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영국은 지난 3월 16일 “2018년부터 100mL당 설탕 5g 이상이 함유된 음료에 L당 18~24펜스(약 300~400원)의 ‘설탕세(Sugar Tax)’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설탕세란 비만 등 각종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설탕이 많이 들어간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2011년 덴마크가 설탕세와 같은 취지의 ‘비만세(Fat Tax)’를 최초로 도입했다. 멕시코·미국 버클리시市·노르웨이·프랑스 등에서도 설탕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설탕세를 도입하며 내세운 명분은 동일하다. 비만 등 각종 질병의 원인 중 하나인 당 섭취량을 낮춰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거다. 고용노동부 보고서(2014년)에 따르면 미국(35.3%), 멕시코(32.4%), 영국(24.7%)의 성인 비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4%)보다 높다.

▲ 덴마크는 2011년 비만세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어 1년 만에 폐지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 성인 비만율은 4.6%로 OECD 평균보다는 낮다. 하지만 식약처에 따르면 1인당 평균 당류 섭취량은 2007년 59.6g에서 2013년 72.1g으로 매년 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 적정 섭취량(50g·210mL 콜라 2캔 분)을 넘어선 수치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설탕세 도입 소식이 전해졌고, 당 과섭취를 둘러싼 불안감은 더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설탕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속속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다. 설탕세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본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설탕세 탓에 제품가격이 오르자, 그 부담을 소비자가 떠안은 멕시코가 대표 사례다. 덴마크도 비만세를 도입했지만 1년 만에 폐지했다. 물가가 오르자 덴마크 국민이 인근 국가에서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유럽의회(EC) 보고서(2014년)도 설탕세의 비효과성을 뒷받침한다. EC는 “제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단가가 더 낮은 제품을 찾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더 해로운 성분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도 영국 정부가 설탕세를 강행한 건 ‘세금 징수’ 때문으로 보인다. BBC가 “설탕세로 인해 약 8700억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꼬집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국내에서 설탕세 논의가 활발한 것도 ‘세금 징수’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설탕세를 도입하자는 건 결국 간접세를 인상하자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정부 보건복지 관계부처의 한 관계자도 “국민 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게 담뱃세를 인상한 것과 뭐가 다르겠냐”고 꼬집었다.

아울러 설탕세가 비만이란 사회 문제의 책임을 서민·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권 팀장은 “저소득·저학력자일수록 저렴한 가공식품을 자주 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며 “구조적 문제를 서민이 책임지라는 얘기냐”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원도 지난해 한 보고서에서 “식품에 물리는 세금은 섬세하지 못한 정책 도구”라며 “가장 가난한 소비자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4월 7일 ‘제1차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손문기 식약처장은 “아직 설탕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정부가 당 줄이기에 직접 나선 만큼 설탕세 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설탕세 논란은 어쩌면 지금부터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