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인의 눈물의 편지

▲ 개성공단 폐쇄 이후 석달이 지났지만 기업주와 노동자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석달이 다 돼 간다. 영문도 모른 채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은 눈물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기업이 영세할수록 고통의 강도는 심하다. 이런 개성공단 입주기업인과 노동자가 더스쿠프에 ‘눈물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들의 절박한 사정과 진심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편집을 하지 않았다.


첫번째 편지 | 울분, 울화 … ‘불면의 밤’

전년보다 조업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희망찬 출발을 준비하던 2016년 2월 10일. 9년여 동안 땀과 정성으로 전 임직원이 일구어온 삶의 터전인 개성공단이 졸지에 폐쇄됐습니다.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전격적으로 단행된 개성공단 중단이 벌써 석달이 지나고 있네요. 그동안 원하지 않은 중단에 대한 울분과 울화에 수많은 밤을 지새웠건만 아직도 충격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정신적인 피해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산손실과 영업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책은 그래서 좌절과 허탈만 안겨줍니다. 

백번 양보해 국가의 안위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라고 생각해도 기업주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하루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솟구치며 화병이라도 생길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동고동락한 임직원들과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나는 왜 이 사업을 개성해서 진행했을까’ ‘애초에 개성공단에 입주하지 않았으면 나을 걸’이라는 회한도 시시때때로 듭니다.

우리 회사는 개성공단에서 23억원 정도의 자산이 손실됐습니다. 국내에서 판매중단으로 매출이 40억원가량 손실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빈사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정부에 대책 좀 마련해달라고 촉구하는 것도 이젠 지칩니다. 밤잠 못 이루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또 지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기해야 합니다. 보란 듯이 재기해야 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각자도생의 정신으로 재기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 합니다. 한편으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바랍니다. 정치권도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처지를 마음으로 헤아려 합리적인 지원대책을 수립했으면 합니다. 할 말 많고 쓸 말 많지만 여기서 줄입니다.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신한용 신한물산 대표(개성공단 비대위 운영위원장) 올림                        

 두번째 편지 | “내 손으로 직원을 자르란 말입니까”

개성공단의 첫번째 시범단지에 입주한 우리 회사는 80억원 넘게 (개성공단에) 투자를 했습니다. 한국에 있던 생산시설도 모두 정리했죠. 하지만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런 투자는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개성공단이 불시에 폐쇄되면서 투자시설은 물론 원부자재, 완제품을 고스란히 놔두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 개성공단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20일 정부의 공단 폐쇄 결정에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내기로 결의했다.[사진=뉴시스=
정부에서 폐쇄를 하기 전에 미리 언질이라도 줬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크나큰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모하게 폐쇄만 해놓고 대책 없이 나몰라라하는 정부 때문에 속이 타 미칠 지경입니다.

게다가 회사가 부도 위기에 내몰리면서 20~30년 함께 일한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중에는 암에 걸린 직원도, 결혼을 앞둔 직원도 있습니다. ‘차마 내 손으로 해고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니, 나라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권하더군요. 하지만 이게 또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직원이 출근을 못하고, 그러면 일손이 또 부족한 ‘악순환’이 반복된 겁니다. 살고 싶습니다.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는 보상을 검토해주십시오.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립니다.
                                                        익명의 개성공단 섬유제조 기업 대표 올림 
 
세번째 편지 | “공단 폐쇄 결정한 분들, 웃음이 나오세요”

개성공단 수천여 근로자들은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거리로 내몰린 이 분들의 가정은 풍비박산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죽음보다 서러운 건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내팽개쳐졌다는 모멸감입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라는 결정을 단행한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오늘도 삼시세끼 먹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살고 있겠죠? 하루하루 생계가 막막한 우리 노동자들의 모습은 잠시라도 생각하시나요? 절망감에 갇혀 죽음의 사지로 내몰리는 우리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긴 한가요.

오늘로 석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개성공단 전면폐쇄 발표와 함께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지옥 같은 현실에 처하였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생활필수품, 옷가지, 현금, 귀중품 등이 그곳에 있는데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통일대교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철수하는 동료들을 맞이하며 걱정과 비통함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요?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누가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있나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우리의 모든 것을 전부를 앗아 갔습니다. 재산을 앗아 갔고, 우리의 존재를 앗아 갔고, 삶과 인생, 살아가야할 명분조차 모든 것을 앗아 갔습니다.

▲ 개성공단비상대책위원회는 공단 폐쇄 보상에 관한 '특별법제정운동'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정부가 내놓고 있는 대책들입니다. 대책 대부분이 기존 정책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색만 내는 정책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언론에는 ‘90% 보상해줬다’ ‘모든 지원을 다했다’라면서 홍보를 합니다. 여론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실적만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쥐꼬리만한 지원을 해주네 마네’ 하던 통일부 당국자들도 참다 못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나서고 나서야 얘기 좀 하자며 슬쩍 손을 내밉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지금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멸시하는지를. 선거철만 기웃거리고 지나면 사라지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잇속을 차리는지를. 대통령이 얼마나 민족의 바람을 무시하고, 국민의 염원을 짓밟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우리는 고개 숙이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잘될거라며 참아온 시간이 얼마나 헛되었는지를우리의 권리를 위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에 담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최인숙 산업단지공단 주재 노동자 올림 

 

네번째 편지 |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니

저는 개성공단 주재 노동자입니다. 설 명절을 지내고 다음날 명절음식을 북측 직원들에게 나눠 주려고 음식을 포장하는데, ‘개성공단 전면 폐쇄’라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속보로 나오더군요. 일회용 비닐장갑을 손에 낀 채 TV 뉴스속보를 바라보며 어찌나 손이 떨리던지.

그래도 몇일 말미를 준다고 해서 개성에 있는 짐을 좀 챙겨올 요량으로 출근날짜에 맞춰 통일대교에 나가보니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와 있더군요. 그날 출입이 계획된 개성공단 근로자들과 기자들, 교통 통제하는 경찰관들로 아수라장이된 그곳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정부의 방침으로 일부 인원만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 폐쇄 3일 후, 저는 본사로 출근해 권고사직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나마 회사의 배려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내년에 일흔을 바라보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당뇨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는 합병증으로 신장과 안구가 좋지 않아 두달에 한번씩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타옵니다. 병원비와 약값이 대략 35만원, 임대아파트에 내는 임대료와 관리비 30만원, 보험료부터 통신료 기타 등등 나가는 비용이 25만원, 이렇게 고정비용이 90만원 정도 나갑니다. 그런데 수입이 막혀 황망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피해를 받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이 피해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주는 건가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홀어머니 병원비도 부담
그런데 요즘은 정부의 태도에 더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엄청나게 보상을 해준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정작 1원 한푼 받지 못한 근로자도 많습니다.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고용유지지원금’은 실효성이 떨어지더군요. 저처럼 권고사직을 당한 노동자들은 이미 재입사를 해야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 폐쇄로 매출이 없는데, 어떻게 재입사를 합니까?

이밖에 몇가지 지원도 있는데, 이미 실행되던 정책들이라 전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참 어리석은 정부 정책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데, 가해자가 없다니 원통하기도 합니다. 개성공단 근로자로 살아온 우리가 무얼 잘못했나요? 저는 지원이 아니라 제대로된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누군가 답을 좀 주세요.
                                                     익명의 개성공단 유통업체 주재 노동자 올림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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