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가 말하는 긱 이코노미

▲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내놓은 노동시장 개혁안은 개혁이 아닌 ‘노동 개악’이라는 지적이다.[사진=뉴시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고용률 70%’를 약속했다. 집권 3년차가 된 지금 고용률은 60%를 맴돈다. 고용시장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사실상 끝났다. 더 큰 문제는 ‘단기고용’을 의미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까지 시장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은 늘고, 대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37.2%. 배달 중 사고나 재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다. 지난해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배달 알바 경험이 있는 239명에게 ‘배달ㆍ배송 아르바이트 실태’를 물어봤다. 이 가운데 ‘제한시간 내 배달완료를 위해 무리하게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응답률은 가장 많은 41.7%를 기록했다. ‘다음 순서 고객에게 불만을 듣기 싫어서(11.1%)’ ‘건당 추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8.3%)’라는 이유도 5위 안에 들었다. 갈수록 진화하는 배달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달에 나서는 알바생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비정규직 급증, 처우는 그대로

우울한 현실은 그뿐만이 아니다. 조사에 응한 이들 중 54.8%는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20.1%에 이르렀다. ‘알바’ ‘임시직’ ‘시간제’ 등으로 분류되는 비정규직이라서 사회 안전망에 포함되지 못한 거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각종 통계는 우리의 불안한 고용 현실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시간제 근로자가 2007년 3월 123만명에서 2016년 3월 222만명으로 80.5%나 늘었다. 임시근로자도 상당히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임시근로자는 전체 임금근로자 1946만7000명 중 511만2000명으로 26.3%에 이른다. 일용근로자 144만8000명까지 포함하면 33.7%다. 10명의 임금근로자 중 3명은 상용근로자, 다시 말해 정규직이 아니라는 얘기다.

▲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대비 53.3% 수준이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임시근로자의 비중은 더 커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측은 “통계청 자료에는 이주노동자가 빠져 있고, 사내 하청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분류돼 있다”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도 자영업으로 분류돼 실제 비정규직 규모는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정규직의 처우다. 비정규직은 크게 늘었지만 처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임금노동자 중 정규직은 월 평균 283만6000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은 151만1000원으로 정규직 대비 53.3%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그 격차가 이전보다 훨씬 벌어졌다는 점이다. 2007년만 해도 비정규직의 임금(127만3000원)은 정규직 대비 64.1% 수준이었다.
 
임시직과 일용직이 대부분인 시간제 근로자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2007년에 시간당 6802원을 받았던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은 지난해 8월 기준 8423원으로 인상됐다. 하지만 월 임금은 정규직 대비 20% 수준에 불과하다. 법정 최저임금을 못 받는 이들도 2007년 24.5%에서 2015년 8월 38.1%로 늘었다. 고용의 질이 나쁜 저임금 일자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노사정 머리 맞대고 해법 찾아야

불안정한 고용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노동 2016’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나라다. ILO(국제노동기구), OECD 등 국제기구가 고용안정의 지표로 사용하는 ‘근속연수’를 보면, 한국의 1년 미만 단기근속자 비율은 31.9%에 이른다. 터키(34.9%) 다음으로 많고, OECD 평균인 18.1%는 훌쩍 웃돈다.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 비율도 칠레(19.5%) 다음으로 역시 2위다. OECD 평균은 33.2%로, 그만큼 이직과 재취업이 잦다는 얘기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정책과 임금 정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며, 연금ㆍ실업급여를 확대해 임금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이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 기간 중에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와는 반대로 ‘기간제 사용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주 52시간 상한제를 주 60시간 상한제로 연장한다’는 내용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내놨다. 김유선 연구위원은 “이것은 노동 개혁이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노동조건을 쉽게 만드는 ‘노동 개악’이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불어온 긱 이코노미는 한국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늪에 빠진 불황과 유례없는 실업률, 여기에 긱 이코노미까지…. 비정규직의 수는 하염없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유연화’를 강조한 정책안까지 쏟아져 나왔다. 대체 어쩔 작정인가. 노사정勞社政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현재로선 방법이 그것뿐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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