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링(44) 오명 전 과학기술부총리 편

오명(76) 전 부총리는 정부에서 일할 때 “직업이 장관”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두 대학의 총장으로 있었고 신문사 사장, 대기업 회장을 역임했다. 경기고ㆍ육사를 나와 대령으로 예편했는데 이례적으로 장성들이 수두룩한 육사총동창회 회장을 지냈다. 이 조직 운용의 달인은 청춘들에게 ‘똑똑하면서도 게으른 리더’가 되라고 권했다.

▲ 오명 전 과학기술부총리는 “독식을 하지도 과욕을 부리지도 않는 계영배戒盈杯 같은 리더”가 되라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Q 멘티가 멘토에게

평생을 바칠 만큼 나에게 잘 맞는 일을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의 장점을 알아낼 수 있나요? 나에 대해 잘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직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판검사나 의사, 대기업 직원이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은 여러분 시대엔 맞지 않아요. 과거 먹고살기 힘들었을 때는 그런 일이 선망의 대상이었죠. 기본적으로 세끼 밥 먹는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죠. 그게 자신이 잘하는 일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고요.

그러지 않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평생 불행할지도 몰라요. 한마디로 직업에 관한 우리 사회의 정형화된 인식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직업이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50년 전엔 우리나라 인구의 70%가 농민이었습니다. 지금은 단 6%만이 농업에 종사합니다. 축구시합에 비유하면 상대팀 골대가 수없이 많아진 겁니다. 어느 골대가 됐든 넣고 싶은 곳에 골을 넣으면 나름대로 성공하는 거예요.

문제는 세상이 급변해 앞으로 직업이 다양해지는 한편 상당수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각광받는 직업도 예외가 아니에요. 인공지능로봇 등의 영향 때문이죠. 미국의 저명한 의사보다 IBM 왓슨의 의학적 판단이 더 정확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로봇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요. 나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내 평생 존속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죠.

이런 시대에 문ㆍ이과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학 전공의 의미도 퇴색할 거예요. 앞으로 그 전공이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만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여러분 세대는 살아가는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거예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스스로 찾아야죠. 어떨 때 행복한지 생각해 보고 나를 잘 아는 친구ㆍ선배와 대화를 많이 해보세요. 저마다 백그라운드와 취향이 다른 만큼 일률적으로 어떤 일을 해보라고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준은 행복인데, 조건이 같다면 아무래도 자신이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더 행복하겠죠.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덜 먹고 더 많이 인생을 즐기세요.

이런 시대에는 폭넓게 공부해야 합니다. 우선 이공계든 인문계든 기본적인 교양은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가 뜨는 원리, 테이블 매너,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갈등의 역사 같은 것들이죠. 문제 풀이에 익숙한 여러분으로서는 이런 공부가 만만치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번 사는 세상인데 독서도 폭넓게 해 보고 경험도 다양하게 쌓아야죠. 

이른바 스펙 쌓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교육의 활성화, 대학 간 교차 수강제 등으로 원하는 공부를 골라서 하는 시대입니다. 대학 서열의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어요. 더욱이 국내 최고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실제로 대기업들도 채용 때 스펙을 거의 보지 않습니다. 기업이 중시하는 스펙도 바뀌고 있어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인성 좋고, 동료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선호하죠. 사회성이랄까요? 현재 대학 재학 중이라면 전공 외 과목을 많이 수강하세요. 전공의 좁은 영역에 갇혀 지내지 말고, 기회가 있으면 다른 나라에 가서도 공부를 해 보세요.

대학은 어차피 교양을 쌓는 곳입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봉사활동도 해 보세요. 봉사를 할 때 스펙을 쌓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가난한 사람, 외로운 노인, 불쌍한 아이를 마음에서 우러나와 돕다 보면 나도 얻는 게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엔도르핀(모르핀처럼 진통효과가 있는 물질)이 생성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죠. 내가 행복할 때 못지않게 남을 행복하게 해 줄 때 엔도르핀이 돕니다. 보람도 느낄 수 있죠. 사실 그런 사회가 선진사회이고, 이런 마인드가 복지국가의 정신적 바탕입니다.

무엇보다, 그래도 나는 상대적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경험조차 해보지 않은 ‘금수저’는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몰라요. 다수의 재벌 3세들이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래서죠. 우리 사회에 ‘헬조선’으로 표상되는 많은 문제가 있는 거 압니다. 양극화가 해소되고 부의 분배가 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죠.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회란 저마다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세상입니다.

헬조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여러분이 이 사회의 리더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리더가 되십시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연주자들에게 각자 자기 역량을 발휘하도록 연주에 대해서는 위임을 하는 한편 서로 화합을 이루도록 흐름을 컨트롤합니다. 바이올린이든 첼로든 연주를 가르치지 않을뿐더러 오케스트라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죠.

둘째 독식을 하지도 과욕을 부리지도 않는 계영배戒盈杯 같은 리더가 되십시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으로 70%를 넘겨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죠. 우리 조상들이 감나무 가지 끝에 달린 감을 까치밥이라며 따지 않았던 지혜 같은 거죠. 까치밥을 따려 사람이 접근하면 가지가 부러져 다치게 되죠. 친구 사이도 번번이 내가 이기면 관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똑ㆍ게형’ 리더가 되십시오. 똑똑하면서도 다소 게으른 리더를 사람들은 따릅니다. 삼국지의 유비 같은 사람이죠.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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