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병원 농협 회장 흔드는 이유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당선과 함께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취임 3개월 만에 압수수색을 당하고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첫 호남출신 회장 길들이기에 돌입했다는 우려까지 등장했다.

▲ 제23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된 김병원 회장이 불법선거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사진=뉴시스]

농협중앙회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3월 농협중앙회의 새 수장으로 오른 김병원 회장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998년 민선제 전환 이후 첫 호남 출신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불법선거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12일 실시된 제23대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이성희 전 낙생농협 조합장, 최덕규 합천가야농협 조합장, 하규호 경북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장, 박준식 농협중앙회 상생협력위원회 위원장,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병원 회장(전 농협양곡 대표이사) 등 총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사실상 이성희 전 조합장, 김병원 회장, 최덕규 조합장 3파전으로 치러진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치열했다. 대의원 291명의 1차 투표 결과, 이성희 전 조합장이 104표(35.9%), 최덕규 조합장 75표(25.5%), 김병원 회장 91표(31.4%)를 차지했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탓에 이성희 전 조합장과 김병원 회장의 결선투표가 진행됐고, 그 결과 김 회장이 163표(56.4%)를 득표하며 제23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선거는 2014년 제정된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감독 아래 치러졌다. 선거 과열로 인한 ‘혼탁선거’ 방지를 위해 위탁선거가 의무화된 이후 치러진 사상 첫 선거였다. 중앙선관위는 김 회장이 선출된 지난 1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농협중앙회장선거가 성공적으로 관리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일 뒤 선관위가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한 최덕규 조합장을 지지했던 대의원 107명에게 ‘결선투표에서 김 회장을 찍어달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3차례에 걸쳐 발송됐다. 발신자는 최덕규 조합장이었다. 둘째는 1차 투표 직후 김 회장과 최 조합장이 투표장을 돌아다니면서 지지를 유도했다는 점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 현장에 있던 직원이 두 후보가 손을 잡는 것을 목격하고 관련 사항에 관해 안내를 했다”며 “이후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66조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장 선거 운동은 후보자만 할 수 있고 선거일 전일까지만 가능하다.

선관위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예상보다 강도가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김 회장 지지문자를 보낸 최 조합장의 측근을 구속 기소했고 6월 4일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최 조합장을 구속했다. 이후 검찰의 예봉은 김 회장을 겨냥했다. 지난 6월 17일 불법선거 혐의로 김 회장 자택과 집무실을 압수수색했고, 30일에는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취임 3개월 만에 압수수색

이를 두고 ‘농협중앙회를 향한 검찰 수사가 과한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이 나온다. ‘첫 호남 출신의 회장을 길들이기 위한 수사인가’라는 다소 원색적인 비난도 제기된다. 야권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검찰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편파적인 수사를 통해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논란과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수사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의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도 지지자 결집을 위한 후보 간 지지행위는 여러번 있었다”며 “그런데 검찰은 유독 이번 농협회장선거에서는 후보 간의 통상적인 지지행위마저 부정선거로 간주하고 수십명의 조합장을 소환하는 등 이례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을 향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두고 정치적 수사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지난 5일 “최초의 호남 출신 농협조합장 김병원 회장에 대한 수사가 또 다른 별건수사로 이어질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줄 것을 검찰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지난 1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호남에서 검찰의 수사가 편파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과거 영남 출신 후보가 단일화할 때는 수사를 안 하고 호남 출신이 선출되니 괴롭힌다’는 여론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검찰 수사에 또다른 복선伏線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내년 2월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기능을 농협경제지주로 이관해야 하는데,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불만을 미리 누르겠다는 포석이 검찰 수사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회장은 선거 공약으로 생산물 생산과 유통을 맡는 경제지주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지주와 경쟁해야 할 지역농협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21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농협경제지주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공약을 철회했다.

실제로 김 회장을 압박하는 듯한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협법 개정안이다. 5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입법 예고한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은 중앙회장 권한 축소와 이사회 호선제를 통한 회장 선출, 축산경제 특례 폐지 등이다. 특히 호선제를 통한 회장 선출로 변경될 경우 중앙회장은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커지는 편파 수사 의혹

농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가 농업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중앙회장 이사 호선제 변경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경제지주 이관은 농협중앙회의 영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며 “여기에 농협법 개정에 따른 회장 호선제는 중앙회장의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 수사로 농협중앙회의 또다른 개혁 작업도 진통을 겪고 있다. 김 회장은 사업구조 개편으로 커진 조직과 인력을 슬림화하고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자체 성과 창출에만 치중하고 있는 ‘창조경제 혁신센터’를 농민들의 창업과 기업 지원에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개혁 작업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취임 100일이 지난 김 회장의 앞길이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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