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

실시간으로 매출을 확인할 수 있는 홈쇼핑은 소비자 반응에 민감하다. ‘펫네임 마케팅’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아는가. 단순하게 들리는 펫네임도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번의 회의와 테스트, 꼼꼼한 모니터링을 통해 닉네임이 탄생한다. 홈쇼핑 펫네임의 산실産室, 신상품 공유회에 가봤다.

▲ GS홈쇼핑은 매주 수요일 ‘신상품 공유회’를 통해 판매 콘셉트를 정한다.[사진=지정훈 기자]
7월 6일 수요일 오후 3시.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GS강서타워 3층 회의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뷰티PD팀 PD, 뷰티케어팀 MD 등 20여명이 긴 테이블에 빼곡하게 모여 앉았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 열리는 ‘신상품 공유회’ 때문이다. 이날은 방송을 앞두고 있는 헤어트리트먼트와 클렌저를 공유했다.

11일 저녁에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헤어트리트먼트의 콘셉트 회의가 먼저 진행됐다. 경태송 뷰티PD팀 사원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제품의 USP(Unique Selling Point)를 KBF(Key Buying Factor)로 전환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USP는 말 그대로 제품의 셀링 포인트다. 여기서 소비자를 유혹할 만한 ‘키’를 찾는 게 이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이다.

그는 “GS홈쇼핑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모 헤어트리트먼트보다 미국시장에서 더 많이 판매되는 하이엔드 제품”이라면서 신상품을 소개했다. “잦은 시술 때문에 갈라지고 손상된 헤어가 고민인 이들에게 숍에서 관리한 것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브랜드만의 기술력인 ‘Low PH System’으로 영양 성분을 퍼즐처럼 채워준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졌다. “원리와 효능을 더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뭔가 확 끌어당길 만한 ‘Key’가 부족하다” “가볍지만 볼륨은 살아난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 등의 의견들이 이어졌다. 사전공유회에 참석하지 않아 이날 처음 신상품을 본 직원에게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인상적인 설명은 있었는지 묻기도 했다. 수많은 조언들이 오고 갔지만 원리와 효능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찾지 못하는 분위기가 계속됐다.

실마리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중간 중간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은정 뷰티PD팀 팀장이 말을 꺼냈다. “우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데 고객은 어떨까요?” 판매 콘셉트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손상된 헤어에 영양을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밸런스를 맞추지 않고 영양만 넣어서 무겁게 느껴졌던 거다’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시종일관 갈피를 잡지 못하던 회의는 이렇게 ‘밸런스’라는 해답을 찾고서야 정리가 됐다.

이어진 클렌저 신상품 공유회. 배효권 뷰티케어팀 과장이 직접 시연을 하며 신상품을 소개했다. 젤 타임의 클렌저가 풍부한 거품으로 변하는 것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한 이들은 너도나도 샘플을 테스트했다. 배 과장은 “거품이 풍부해 밀도감이 높고 밀착력도 좋다”면서 “빠짐없이 꼼꼼하게 클렌징할 수 있다는 콘셉트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단지 거품이 풍부해서 클렌징이 잘 된다는 건지, 아니면 입자가 미세해서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미세한 거품을 말하고 싶다면 입자크기를 비교하는 과정이 들어가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조언들이 나왔다. 과거에 GS홈쇼핑에서 클렌저를 판매했던 경험이 있는 브랜드라는 설명에 “‘클렌저 전문’이라는 업체의 히스토리를 추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런 의견에 담당MD는 “방송 전까지 여러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신상품 공유회에서는 결국 이렇다 할 ‘펫네임’이 탄생하지 않았다. 앞으로 방송 전까지 몇 번의 회의를 거쳐 펫네임이 탄생할 수도, 방송을 론칭한 후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예상치 못한 펫네임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냥 만들어지는 건 없다는 거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직관적인 펫네임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고 치밀한 계산과 전략이 담겨 있다. “홈쇼핑은 판매를 도와주는 역할”이라면서도 그들이 “목숨 걸고 판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Mini interview | 김은정 GS홈쇼핑 뷰티PD팀 팀장
“고객 관점서 고객 불편 해소”

신상품 공유회를 마치고 김은정 뷰티PD팀 팀장을 만났다. 김 팀장은 10년 넘게 GS홈쇼핑에 몸담고 있는 터줏대감이자 뷰티전문가다. 회의에서 팀원들이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날도 명쾌한 지적으로 갈팡질팡하던 신상품의 콘셉트를 정해줬다. 수많은 신상품들의 펫네임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들어봤다.

▲ 김은정 GS홈쇼핑 뷰티PD팀 팀장.[사진=지정훈 기자]
✚ 신상품 펫네임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신상품 공유회를 하다보면 수많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담당MD가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본 것을 직관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론칭 후 상품평에서 캐치하는 경우도 있다.”

✚ 예를 들자면?
“GS홈쇼핑에서 독보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에이지투웨니스 에센스 커버팩트(애경)’는 모델이 배우 견미리씨라 일차적으로 ‘견미리팩트’라 불리기도 하지만 ‘딸과 나눠 쓴다’는 후기들이 많아 ‘모녀팩트’로 불리게 됐다. 회사의 기획이 아니라 판매 후 상품평을 모니터링 하는 과정에서 생긴 펫네임이다.”

✚ 기획 단계부터 펫네임이 정해진 예는?
“데싱디바 매직프레스’가 그런 경우다. 바르거나 굽지 않아도 손쉽게 붙이면 완성된다는 데서 착안해 ‘1초 성형네일’이라는 펫네임을 붙였다. 별다른 기기나 도구 없이 간편하게 떼고 붙일 수 있어서 인기다.”

✚ 펫네임 마케팅이 다 성공하진 않을 텐데.
“맞다. 모두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 메이크업 브랜드는 진동브러시를 이용해 꼼꼼하게 화장할 수 있다는 상품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1분 살롱 오토메이크업’이라는 펫네임을 만들었지만 브랜드와 매치가 잘 되지 않고 살롱메이크업, 아티스트 제품과도 크게 연관이 없어 실패했다.”

✚ GS홈쇼핑은 뷰티 부문에서 유독 강하다.
“일반적으로는 납품업체, 담당PDMD만 모여 콘셉트를 정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담당이 아니더라도 모두 모여 회의를 한다. 3~4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구축한 시스템이다. 단순히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점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다. 그 힘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 같다.”
김미란ㆍ노미정ㆍ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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