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내부자들 ❶

▲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권력층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생생한 현실이다.[사진=더스쿠프]
영화 ‘내부자들’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멍에를 지고도 700만 관객 고지까지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미국에서 성인영화 판정 기준이 된다는 욕설(language), 노출(nudity), 그리고 폭력(violence)라는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추었는데도 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차진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메이저 신문의 논설주간(백윤식)이나 대통령 후보(이경영), 검사(조승우) 모두 너무도 자연스럽게 욕을 내뱉는다. 조폭 두목(이병헌)이 내뱉는 육두문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의 짧고 강렬하고 차진 비속어와 욕설들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폭력도 주먹질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목을 톱으로 ‘썰어’버리거나 손도끼로 절단한다. 익숙한 총ㆍ칼 액션과는 차원이 다른 폭력이다. 어디 그뿐인가. 벌거벗은 ‘늙은 엘리트 수컷’들은 떼로 앉아 여자들을 불러놓고 엽기적인 회식을 일삼는다. 불편한 장면들이다. 헌데 그 불편함에도 700만 관객이 찾았다.

관객들은 영화가 그려내는 ‘비非현실’ 혹은 ‘반反현실’에 대리만족 혹은 안도감을 느낀다. 시골처녀에게 백마 탄 꽃미남 왕자가 나타나 결혼에 골인하는가 하면 난데없이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영화라서 가능해지는 헛된 꿈이다. 반대로 ‘지옥 같은 비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아직 지옥은 아닌’ 현실에 사는 것에 안도하기도 한다. 미국 뉴욕은 재난영화의 단골 무대다. 자연재해도 외계인도 늘 뉴욕을 노린다. 한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뉴욕은 약 70차례 파괴됐다고 한다. 매번 목이 잘려 뒹구는 자유의 여신상은 편할 날이 없다.

▲ 영화 속에서 파괴되는 뉴욕을 본 관객들은 ‘오늘도 뉴욕은 무사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사진=더스쿠프]
많은 영화들이 뉴욕을 처절하게 파괴하는 것은 뉴욕을 저주하는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관객들이 ‘오늘도 뉴욕은 무사하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더욱 뉴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끔찍한 형상의 좀비들이 해일처럼 몰려드는 좀비영화를 보고나면 적어도 무표정한 거리의 행인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700만 관객들은 영화 ‘내부자들’을 관람하고 대리만족과 안도감 중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재벌 회장과 메이저 언론사 논설주간, 그리고 대통령 후보가 모여 국민을 ‘개돼지’라 부르며 낄낄대고, 우장훈 검사의 대사처럼 “족보 없는 놈은 조용히 나가 뒈지세요”라고 할 만큼 망가진 사회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행복해졌을까. 불행하게도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권력층의 모습은 외계인이나 좀비의 습격 같은 비현실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생생한 현실이다. ‘내부자들’의 리얼리티를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교육부 고위관리가 몸소 “나도 국민은 개돼지라고 생각한다”고 확인해준 일도 있었다.

‘내부자들’의 스토리라인은 영화라기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나 사회고발 프로그램 같다. 그만큼 사실적이다. 다만 그 결말은 외계인 침공이나 좀비 출현처럼 ‘비현실적’이다. 검사와 조폭두목이 의기투합해 거악巨惡에 일격을 가한다는 설정은 시골처녀와 왕자님의 결혼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비현실이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보여주는 지옥도는 그렇게 너무 현실적이어서 두렵고, 영화의 결말은 반대로 비현실이어서 또 두렵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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