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거꾸로 보는 오페라 | 오페라의 기원

▲ 메세나의 관심은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사진=뉴시스]
17세기에 들어서며 많은 메세나(Mecenatㆍ예술가들을 후원하던 그 당시 귀족을 지칭)는 합창보다 독창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모임으로 이어져 피렌체의 조반니 바르디(Giovanni Bardi) 백작의 저택에서 ‘카메라타 피오렌티나’라는 모임이 결성됐다.

이 모임에는 작곡가 빈첸조 갈릴레이(Vince nzo Gallilei), 야코포 페리(Jacopo Peri),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오타비오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가 속해 있었다. ‘아베마리아’로 유명한 작곡가 자코모 카치니(Giacomo Caccini)도 일원이었다.

후원자인 바르디 백작을 비롯한 당시 대표적인 작곡가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합창을 수세기 동안 들어온 청중의 싫증을 백번 공감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합창보다 연습실 등지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독창, 이를테면 솔로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들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1581년 빈첸조 갈릴레이는 새로운 음악 형태를 향한 이런 갈망을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대화(Dialo go della musica antica e moderna)’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그동안 멸시돼 왔던 고대 그리스의 연극(Tragedy)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로 이뤄진 연극이야말로 어떤 합창곡보다 우월하다는 거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연극 대사에 노래를 붙인 레치타르 칸탄도(Recitar cant ando) 양식의 오페라다.

합창에 지쳐 있던 청중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독창자의 역할이 커지자 가수를 구하는 일도 시급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여성들은 성차별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고, 남자들은 고음을 내는 방법을 몰라 테너(남성의 가장 높은 음역)가 존재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테너를 대신해 유일하게 노래할 수 있었던 솔로 가수들을 배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고, 급기야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의 생식기를 절단해 거세 가수, 일명 일 카스트라토(IL Castrato)를 배출해냈다. 영화 ‘파리넬리(Farinelli)’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 점점 많은 작곡가들이 탄생하자 여성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 중저음 가수인 메조소프라노가 탄생했고 이어 고음가수인 소프라노도 등장했다. 거세하지 않은 성인가수(테너 듀프레ㆍDu Prez)도 혜성처럼 등장했다. 거세의 고통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거세 가수들의 시대는 그렇게 종말을 고하게 됐다.

메세나의 관심은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 초기 오페라는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주로 신화를 다뤄 지루하고 소박했지만 그들이 오페라 탄생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메세나들의 기여가 단지 예술가 후원을 넘어선 더 큰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탈리아 메세나들이 후원금을 모아 마체라타 야외 오페라 극장을 설립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현정 체칠리아|성악가(소프라노) sny409@hanmail.net|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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