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가 모르는 기술금융의 민낯

▲ 기술신용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무상태와 담보는 필요하다.[사진=뉴시스]
빼어난 기술만 있으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기술금융제도’. 시행된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금융위원회는 각종 설문조사를 근거로 “기술금융이 시장에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문턱이 높은 건 매한가지라는 비판이다. 누구 말이 옳을까. 기술금융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담보가 부족하고 재무상태가 좋지 않아 신용도는 낮지만 기술력은 우수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제도.’ 2014년 7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야심차게 추진한 ‘기술신용대출(기술금융ㆍTCB)’의 골자다. 쉽게 말해, 기술력이 빼어난 젊은 회사를 육성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이 제도는 알찬 열매를 맺고 있을까.

지난 12일 금융위는 ‘2016년 기술금융 만족도 조사 및 FGI 실시 결과’를 발표했다. “기술금융을 이용해본 중소기업 CEO 400명과 시중은행 지점장 2591명(설문조사), 은행 지점장중소기업 CEOTCB 전문가 26명(심층면접)을 대상으로 FGI(Focus Group Interview표적집단면접법)를 실시한 결과, 기술금융은 중소기업 자금 조달 측면에서 빠르게 정착했고 안정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금융의 결과를 보여주는 ‘숫자’도 양호했다. 무엇보다 이 제도를 시행한 후 기술금융대출 평가액(신규증액만 집계)이 50조2000억원을 돌파했다. 중소기업 CEO들의 만족도 점수는 5점 만점에 3.90점(지난해 3.92점)에 달했다. 특히 금리(3.78)와 대출한도(3.95)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기술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달라진 게 없다는 하소연이다. 익명을 원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사실 기술평가는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다”면서 “말로는 기술평가라고 하면서 그 기준에 경영상태, 대표의 도덕성 등이 포함돼 있는 것도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기술금융을 담당하는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보다 높은 실적을 요구 받고 있다”면서 “리스크를 제거하려는 취지는 알겠는데, 요즘처럼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선 제아무리 기술력이 빼어나도 성공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기술금융은 기술력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금 회수인 만큼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면서 “기술신용대출이라 하더라도 담보, 재무상태, 신용 등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기술력만으로 대출을 받을 순 없고, 기술평가 등급에 따라 금리나 대출한도가 추가적으로 완화되는 수준이라는 거다. 기술신용평가기관의 등급 체계는 기술등급(T1~T10)에 신용등급(aaa~d)을 더한 기술신용등급(AAA~D)으로 이뤄져 있다. ‘기술금융을 통해 원래 대출을 받을 수 있던 기업만 혜택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걸림돌은 그뿐만이 아니다. 기술금융이 안착하기엔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 현재 기술신용평가기관은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평가정보, 이크레더블 등 4곳에 불과하고, 인력도 현저히 부족하다. 더구나 기보는 기술평가의 비중을 낮추고 있다. 제윤경(더민주당)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4개사의 평가인력은 1019명(전문인력 268명기보 제외 438명)인 데 반해 접수건수는 14만4300건(2015~2016년 6월)에 달했다. 평가인력 1명이 한달에 평가해야 하는 건수가 약 20건에 달했다는 얘기다. 단순계산으로 하루에 한건씩 평가를 했다는 건데, 평가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얼마만큼 유지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일부 시중은행이 올 3월 이후 운영하고 있는 기술신용평가팀의 실적도 따져봐야 한다. 이 평가팀이 자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금융의 규모가 많아야 20%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술금융제도는 평가구조, 인프라 등 손볼 곳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안착했다’는 금융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역시 ‘현장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결과물’일 공산이 크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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