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램스

▲ 영화 ‘램스’의 장면들.[사진=더스쿠프 포토]
설원이 펼쳐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이슬란드의 한 시골 마을. ‘키디’와 ‘구미’는 양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키워온 형제다. 40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남다른 사연이 있지만 그들은 해묵은 감정을 풀 필요도, 이유도 없다. 오로지 양만 키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형제가 40년 만의 침묵을 깨고 의기투합하는 일이 생긴다. 마을에서 개최된 ‘우수 양 선발대회’에서 키디의 양이 우승을 차지하자 구미의 질투가 폭발한 것도 잠시, 갑자기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한다. 오매불망 양만 바라보며 살아온 형제에게 ‘양들을 모두 죽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지시가 떨어지는데….

아이슬란드는 1년에 10편 남짓한 영화가 제작되는 영화 불모지다. 어린 시절을 아이슬란드 북부 시골마을에서 보낸 그리무르 하코나르슨 감독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램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감독은 자신이 자란 마을뿐 아니라 영화 사전조사를 위해 아이슬란드 전역을 여행했고, 많은 농부들과 대회를 나눴으며, 많은 양 목장을 방문했다. 그들의 생활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양 목장 관련 책을 읽었고, 그것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제목이 ‘램스’인 만큼 영화에는 많은 양들이 등장한다. 양은 키디와 구미에 이은 제3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감독은 특별히 리허설 기간까지 가지며 철저히 준비했다. 며칠간 양들만 데리고 연기 연습을 했는가 하면, 양떼를 목욕시키는 것까지 모든 트레이닝을 다 거쳤다. 실제 목장의 양들은 애교도 없고, 경계심이 많아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일쑤인데 리허설 덕에 양들은 오히려 배우보다 수월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촬영장에서 늘 대기하고 있던 양 트레이너가 별로 할일이 없을 정도로 양들의 연기가 아주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감독은 “만약 동물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다면 ‘램스’의 양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상을 몇 개씩 받을 수 있을 정도”라며 양들의 연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형과 동생으로 호흡을 맞춘 아이슬란드 출신 테오도르 줄리어슨과 시구르더 시거르존슨도 아이슬란드 시골마을에 실제 살고 있는 사람처럼 캐릭터에 녹아들어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 결과 시거르존슨은 아이슬란드 에다상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테오도르 줄리어슨은 올해의 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제27회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에서는 함께 최고의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영화는 아직 한국에서 낯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램스’는 제20회 부산 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초청돼 국내 평단 및 관객들에게 일찌감치 큰 관심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이미 호평 일색이다. 제68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했고,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전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광우병’으로 애지중지 키워오던 소가 살처분당하는 걸 바라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낯선 이 영화를 보며 가슴이 저릿할 것이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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