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타스 경제학

▲ 행복은 구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존한다.[사진=뉴시스]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1960~1970년대 유행하던 ‘하면 된다’식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 8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수첩에 적힌 청와대의 업무 지침이다. 직속 상사였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적은 듯하다.

밤을 낮 삼아 일하고, 휴일에도 출근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국사에 전념하라는 뜻은 이해가 되지만, 저렇게 개인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조직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불행을 동력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지도자가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국민이 행복해야 지도자가 행복할 텐데 불행의 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국민행복 지표는 33위로 꼴찌서 2등이다. 복지좌표는 예산이 늘면서 21위로 조금 올랐지만, 자살률, 출산율, 삶의 만족도, 여가시간 등 행복에 관한 지표가 바닥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행은 행복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시작된다. 탄핵까지 몰고 온 대통령의 업무스타일은 관저 칩거와 소통 부재다. 혼자 밥 먹고, 혼자 TV 보는 일상이 이어지니 그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갈라파고스 섬에서 홀로 미용시술하고, 올림머리를 한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모든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원인은 대통령이 가족을 멀리하고, 공조직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틈을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이 비집고 들어가서 생긴 사달인데 더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살겠다니….

‘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라틴어로 행복을 뜻하는 ‘펠리시타스(felici tas)’는 ‘더불어 행복’이라는 뜻이다. 일정한 수준의 소득은 삶의 여유에는 필수적이지만 돈으로만 채울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행복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열정, 관심 같은 개인의 행복에는 돈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행복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돈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행복학의 대가인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이탈리아 로마룸사대)는 “행복은 개인의 마음상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행복은 구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TV를 시청하거나 SNS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복감이 낮아진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서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관계재(relationship goods)가 아니고 기만적인 소비재일 뿐이다.

행복의 원천은 가족이다. 별거에 따른 불행은 실직이 주는 고통보다 평균 5배나 더 심각하다고 한다. 뇌과학자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욕망과 쾌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일상적 안정감을 만끽하려는 노력,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기여, 결과에 대한 집착보다 과정을 즐기는 태도가 지속가능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UN 세계행복보고서 ‘국민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바로 ‘휘게’라고 한다. 노르웨이 단어인 휘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느낌, 세상으로 보호받는 느낌,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말한다. 느리고 단순한 삶, 단출하고 소박한 활동,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이 휘게로 이어진다. 구체적인 ‘휘게 라이프’의 방법으로 양초를 켜고, 초콜릿 케이크 등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서,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다.

물론 휘게를 통해 삶의 근본적인 골칫거리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갈등과 고민을 잠시 밀쳐두고 ‘작은 행복’을 누리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얼마나 만족하느냐의 차이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위해 노력해야 행복이 커진다.

거리에 캐럴이 사라진 크리스마스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극심한 경기불황에다가 각종 게이트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러고도 민란民亂이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의미는 바로 사랑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분노의 촛불 집회 대신 각 가정마다 사랑과 행복의 은은한 촛불이 타오르기를 소망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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