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손호철 서강대 교수

▲ 손호철 교수는 “탄핵이 그랬듯이 적폐 청산도 촛불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손호철(65)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됐을 때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광화문에 나와 석고대죄했다면 그 사람이 앞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쇼 한다고 도리어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 “물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문제는 대권 주자들이 너무 왜소한 데다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니 전투엔 이기고 전쟁에선 지는 겁니다. 새삼 3김金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3김 같은 큰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시대정신을 읽고 마음을 비워 사즉생死卽生할 때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대권 잠룡들에게서 생계형 정치 자영업자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 촛불의 시대정신이 뭐라고 보나요?
“정의에 대한 갈구죠. 불공정한 나라에 대한 분노가 내연하다 박근혜ㆍ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계기로 분출한 겁니다. 돈 많은 부모가 곧 실력인 세습사회와 결별하고, 열심히 일한다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로 이행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돈도 실력이다, 너의 부모를 원망하라’고 한 정유라야말로 역설적으로 촛불 혁명의 최대 기여자예요.”

✚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란 법언이 있습니다만, 왜 정의가 지체됐다고 보나요?
“국정농단 이면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복원한 박정희 시대 유신적 통치 방식이 있었고 그 시대에도 없던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고대 신정국가의 그림자까지 너울거렸어요. 젊은 세대가 헬조선에 빗대 고조선이라고 부른 우리 사회의 민낯이죠. 제왕적 대통령, 대의되지 않는 국회, ‘내시’ 여당과 눈치만 본 야당, 제 구실을 못한 검찰, 언론 및 지식인 사회에 분노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거죠.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 씨가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주도했다는 십상시 게이트가 오늘의 파국을 막을 마지막 기회였어요. 당시 검찰이 은폐의 주역이었지 않습니까? 검찰이 지금 특검처럼 했다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거예요.”

✚ 박근혜 대통령 등장이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나요? 다소 도발적으로 박 대통령 당선의 ‘5적’을 꼽는다면 누구누구인가요?
“4년 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승리의 길이었던 당 개혁을 못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석연치 않은 단일화를 했어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TV토론 발언으로 역풍을 불렀죠. 무엇보다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집권욕에 사로잡혀 입을 다물었습니다. 박 대통령 당선 후에라도 공개된 권력인 검찰, 언론, 지식인 사회가 제대로 견제해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걸 막았어야죠.”

✚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을 MB 정부 출범까지 소급할 수도 있겠죠?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과오는 경제성장을 못 시킨 게 아닙니다. 당시 성장률은 4%대로 2%대인 박근혜 정부보다 높았어요. 문제는 분배에 실패해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이죠. 말하자면 헬조선을 만든 원조가 이들 정부라는 거예요. 그 결과 1997년 대선 땐 가난한 사람들이 김대중 후보를 많이 찍는 계급 선거를 했지만 2007년엔 가난한 사람일수록 MB를 많이 찍었어요. 정말 못 살게 된 서민들이 운동권 엘리트들에게 복수를 한 거죠. 역계급 투표랄까요? 보수 정권을 성립시킨 건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이었습니다. 그 시절 분배의 실패가 지금의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 거죠.”

✚ 이른바 제3 지대론은 어떻게 보나요?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친박은 의미가 없어진 만큼 사실상 제2 지대라고 할 수 있죠. 부분적으로 세탁이 이루어진 바른정당, 반기문 세력, 국민의당, 더민주 내 비문 세력의 공통점은 자력으로 대통령을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반문反文 내지는 반더민주 연합(coalition)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 반기문ㆍ안철수 연대는 쉽지 않을 거로 봅니다.”

✚ 가시권에 들어온 조기 대선에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굳이 그런 합종연횡이 필요없을 텐데요?
“회의적이지만, 아직은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선거연령 18세 인하까지 패키지로 통과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촛불집회의 고등학생 발언을 보면 정치학자로서 내 밥그릇이 위험하다 싶을 만큼 정치의식이 뛰어나요.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8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유일한 나라예요.”

✚ 결선투표제 도입은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입장도 있는데요?
“논란이 있지만 다수 헌법학자의 주장대로 저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촛불혁명의 민의를 반영하려면 반민주적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 핵심은 결선투표제 도입이지만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도입해야 돼요. 그래야 낡은 지역 연합의 틀을 깰 수 있어요.”

그는 이 점에서 손학규 전 의원이 주장한 호남과 충청의 ‘지역주의’ 연합,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측이 국민의당에 제안했다는 뉴DJP 연합 구상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1000만 국민을 봉건시대 농노로 보는 발상입니다. 촛불 집회도, 6월 항쟁 때도 지역주의는 없었어요. 시대착오적이거니와 봉건적 지역 정당과 사당私黨 체제야말로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입니다. 촛불의 열기를 정치권이 수용해 21세기 새로운 한국상을 끌어내야 합니다.”

✚ 시민들이 정치권을 압박할 수단이 있나요? 논의체부터 마땅치 않은데요?
“탄핵이 그랬듯이 적폐 청산도 촛불의 힘으로 해야죠. 패키지로 개혁을 할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 기회입니다. 촛불 집회 참가자의 구성을 보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약 20만명, 나머지 80~90%는 조직화된 일반 시민입니다. 이들 시민도 참여하는 방식으로 기구를 확대 개편해야 합니다.”

✚ 헌재의 탄핵 심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법리적인 면을 포함해 낙관적으로 봅니다. 헌재가 민의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면 시민들이 헌재도 탄핵하겠죠.”

▲ 손 교수는 “촛불의 시대정신은 정의에 대한 갈구”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경우에 따라 유혈 사태 같은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겠네요?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공권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죠. 어쨌거나 국민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헌재가 한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 기우 같지만 보수 반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없는 거 같습니다. 만에 하나 쿠데타가 일어나도 국민이 용인하지 않을 거예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습니다. 야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가 무산될 수는 있겠죠. 그래서 보수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덜 개혁적일 순 있겠지만 시대정신에 반하는 길을 가지는 않을 겁니다.”

✚ 차기 대선 주자들이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나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입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대로만 하면 돼요. 대표적인 게 비정상의 정상화죠.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이루어져야죠.”

✚ 개헌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개헌은 판도라의 상자이자 뜨거운 감자입니다. 제헌 수준의 개헌을 해 새로 출범하는 나라는 7 공화국이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이 돼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제2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질 나쁜 대의 민주주의의 품질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시민의 통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단 개헌에 관한 논의는 대선 전, 실행은 대선 후 하는 게 바람직해요. 선 대선 후 개헌 식으로 호도해선 안 됩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