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환율전쟁 전망

▲ 트럼프의 보호주의에 모순이 있지만 약달러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창하는 보호주의는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 한국처럼 환율에 민감한 수출국가에 달러 약세는 그 자체로 리스크다. 문제는 트럼프의 입김을 막아줄 강달러 요인이 너무 약하다는 거다. 더구나 트럼프는 집권 초기다. 당분간 약달러 상황 속에서 한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물건을 빨리 팔아야 자금 회전을 시킬텐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다.” 한 중소 수출업체 사장의 하소연이다. 달러가치가 널을 뛰어서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 3개월 사이 원ㆍ달러 환율은 75.5원(최저 1137.00원ㆍ최고 1212.50원)까지 오르내렸다. 환율이 급등락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커다란 위험요인일 수밖에 없다. 수출업체 사장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다.

눈여겨볼 것은 최근 달러가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와 함께 움직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8일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주가와 원자재가격이 오르는 등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났다. 달러가치는 빠르게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재정지출을 통한 인프라투자 확대, 감세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것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줄곧 보호주의를 강조하면서 달러가치는 하락세다. 재정확대 정책의 불확실성이 달러가치 하락에 불을 붙였다. 지난 1월 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트럼프의 재정정책에 불확실성이 많다”는 우려를 내놓자 다음날 원ㆍ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3원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이 있던 1월 12일, 경제정책 세부 운용방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9.5원 또다시 하락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1월 20일,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자 원ㆍ달러 환율은 다시 떨어졌다. 1176.00원이던 달러가치는 2월 6일 기준 38원 떨어진 1138.00원을 기록했다. ‘트럼프 입에 따라 달러가치의 방향이 바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환율전쟁을 야기할 만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는 거다. 취임 전인 1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는 “미 달러화의 가치가 너무 높아 미국 기업들이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고, 심지어 1월 31일에는 “중국과 일본이 환율을 조작했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은 환율조작국으로 독일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하는 보호주의에 따라 달러가치 하락세는 계속 이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달러 요인이 있어 달러가치가 하락 추세를 타기엔 무리가 있지만, 약달러를 막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약달러 정책은 모순

달러가치에 영향을 끼칠 요인들은 복합적이다. 상승세를 부를 요인과 하락세를 부를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단 하락세 요인부터 보자.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트럼프다. 그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중국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느냐다. 이미 경고 발언으로도 환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환율조작국 지정은 더 큰 달러가치 하락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모순이 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명해 달러 약세를 유지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 이는 시장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미국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경기부양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힘의 논리를 이용해 달러가치 하락을 도모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중국과 유럽연합(EU)를 배제하고 세계경제 질서에서 ‘미국만 이익’인 상황으로 만들기엔 무리수가 많다.
상승세 요인은 어떨까.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지난해 말 강달러 기조를 이끌었던 ‘트럼프의 재정확대 정책’이다. 감세와 인프라투자 확대, 규제완화 등이 가시화될수록 경제성장 속도도 빨라지면 시장금리는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 미국 내 고용지표도 개선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역시 금리인상을 2~3차례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달러가치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재 예상되는 ‘연내 2~3차례’ 정도의 금리인상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 연준의 금리정책 판단기준 가운데 하나인 미 고용수준이 대폭 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 노동부 1월 비농업취업자는 전월 대비 22만7000명으로 시장예상치보다 큰 폭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11월 비농업취업자가 당초 20만4800명에서 16만4000명으로 대폭 하향 조정돼 전체적으로는 지난해 월평균 취업자 증가 수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또한 1월 실업률이 시장예상(4.7%)보다 높은 4.8%를 기록했지만, 이는 미국의 완전고용 수준인 4.5~5.0%에 포함되는 정도다.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보다 더 낮아지면 금리인상을 가속화하겠지만, 현재로선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임금상승세도 주춤하고 있다. 1월 기준 미국의 시간당 임금은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지난해 12월엔 0.2%, 11월엔 0.4% 상승했다는 걸 감안하면 절반씩 줄고 있는 셈이다.

▲ 미 연준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강달러로 전환될 여지가 많아진다.[사진=뉴시스]
“약달러 추세 장기화 어렵지만…”

결국 시장에는 (확대 가능성은 크지 않은) 미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 트럼프의 재정확대 정책이 강달러 요인의 축으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강조에 따른 약달러 기조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다. 시장에서 “올해 미 달러가치 약세가 예상되지만, 약달러 추세가 장기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약달러 상황을 크게 뒤집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느 나라든 집권 초기에는 입김이 센 만큼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밀리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모순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의 약달러 유지 정책으로 인해 연말까지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 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집권 초기인 트럼프의 약발이 더 크지 않겠느냐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