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CEO, 나를 바꿔놓은 한 문장’ 박찬구 전 도레이케미칼 대표

16년 만에 복귀한 첫 직장에서 CEO를 지낸 박찬구 전 도레이케미칼 대표는 “리더는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말했다. 직장인들에게 CEO가 되려면 팀장 시절부터 “외로움을 견디고 외롭다고 징징대지 말라”고 조언했다. 동정을 사려고도, 변명도 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 박찬구 전 도레이케미칼 대표는 “리더는 팀을 만들어 이끄는 사람”이라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CEO는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구성원에게든 고객에게든 구구한 변명을 하지도 말아야죠. 다른 모든 리더와 마찬가지로 CEO는 그 자리에 앉는 날부터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예요.”

박찬구 전 도레이케미칼 대표는 “회사가 어려울 때도 외롭지만 잘 될 때도 CEO는 외롭다”고 말했다. “CEO는 경영 성과가 좋을 때는 좋을 때대로 기여자가 누군지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해 쓰는 것도 사장의 일이니 그 사람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 못해도 사장이 책임을 져야죠. 결국 사장은 회사의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사장은 그래서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입니다. 외롭지만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The bucks stops hereㆍ트루먼 미 대통령)’는 자세로 일해야 돼요.”

박 전 대표는 이 이야기를 도레이케미칼의 전신인 웅진케미칼 시절 오너였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에게서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윤 회장 스스로도 자신의 말대로 그룹이 어려웠던 시절 어렵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저에게는 경영 멘토 같은 분입니다. CEO로서 당당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배웠죠.”

한양대 섬유공학과 출신인 박 전 대표는 병역특례자로 제일합섬(새한ㆍ웅진케미칼의 전신)에 들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유학을 떠나기까지 6년 간 근무했다. 귀국 후 삼성경제연구소ㆍ아서디리틀코리아ㆍ재능교육 등을 거쳐 2008년 16년 만에 첫 직장으로 귀환했다. 웅진케미칼 시절 대표가 되어 도레이 인수 후까지 5년간 CEO로 재임했다.

리더의 덕목으로 그는 솔직함을 첫손에 꼽았다. “잭 웰치가 말하는 candor죠. 리더는 팀을 만들어 이끄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팀을 만들려면 허심탄회하게 팀원들에게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필요합니다.”

웅진케미칼이 일본 도레이사에 매각될 당시의 일이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박 대표가 어느 기업으로부터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다. 사장이 사익을 추구한다는 둥 이런저런 음해성 이야기가 회사 안에 파다했다.

그는 본사와 공장을 오가며 직원들을 상대로 타운홀 미팅 방식의 설명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우선 매각은 가장 높은 액수를 제시한 기업에 하는 게 매각의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미리 설치한 질문함에 담긴 질문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했다. 분기별 경영설명회 때 같은 방식으로 문답 시간을 가졌기에 직원들도 잘 호응했다.

어떤 질문이든 수용하다 보니 자극적인 질문도 나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강철 같은 의지로 버티면서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죠. 개인도 조직도 소통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말 포기해서는 안 되는 미션입니다.”

리더는 또 아랫사람에게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 판단했으면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합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탓에 당신이 공연히 힘만 뺐네’ 하고 아랫사람에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경우 리더나 연장자가 흔히 사과하지 않고 어물쩍 넘기거나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식으로 되레 당당하게 굽니다. 그래서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려요. 리더는 세 보여야 하고 잘못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죠.”

그는 자녀에게도 잘못을 했을 땐 사과를 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리더는 멘탈이 강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태평한 마인드를 장착하고 어려움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회사가 어려우면 끙끙댈 때가 많았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깨곤 했죠. 사장은 본디 외롭고 힘든 자리라고 생각하니 끙끙댈 이유가 없더라고요. 회사를 매각하는 중차대한 상황에서도 깨지 않고 잘 잤습니다. 잠 못 이룬다고 되는 일도 아니거든요. 따지고 보면 인생이 본래 고해苦海이고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 신세입니다.”

그는 변명은 금물이지만 공세적인 해명은 때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웅진케미칼이 도레이에 인수될 당시 노조 측이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그는 웅진그룹의 상황이 안 좋았고 웅진케미칼이 새 대주주를 만나 회사가 안정되는 건데 왜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축하를 받을 일이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노조가 격려금으로 명목을 바꿔 다시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다. 현수막도 걸었다. 일종의 정서법에 따른 요구였다. 그는 “참 사장 할 맛이 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돈을 주고 나서 “대주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회사를 상대로 삥 뜯으려 하는 건 나쁜 관행”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노조 간부들의 표정이 복잡했습니다. 나중에 개별적으로 만났을 땐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동정을 구해서는 안 되지만 CEO가 할 말은 해야죠.”

외로운 CEO에게 사내 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임원들과 일도 같이 하고 술친구도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모든 임원과 그런 관계를 맺는 건 그러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저의 경우 80% 이상의 임원과 터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친구가 되기 어려운 임원도 있어요. 리더가 다가가야 하지만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을 견딜 각오를 하라”고 말했다. “외로워도 징징대지 말아야 합니다. 본디 외로운 자리기 때문이죠. 또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하고 변명을 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 박찬구 전 대표는 “스펙과 안정성을 좇지 말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경영 화두로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의 적응을 꼽았다. “저성장도 아니고 아예 무無성장 시대를 맞았습니다. 제조업체 중 생산을 늘린 후 매출이 증가한 데가 몇 곳 없어요. 조직이 고령화해 앞으로 로봇을 가동해도 생산성은 떨어질 겁니다. 고령화된 합창단이 고음 불가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죠. 연공에 따른 임금 체계라 임금은 오르고 노조는 임금 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는 게 현실이고요. 뉴노멀 이슈에 전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건지, 우리 앞에 놓인 숙제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다수가 가는 길과 반대의 선택을 하라고 권했다. “한마디로 스펙과 안정성을 좇지 말라는 거예요. 명문대를 나와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렵게 취직 돼도 거기는 이미 레드오션이에요. 들어가 봤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어렵고요. 그러니 대학에 목 매지 말고, 외국행도 고려해 보고, 중소기업을 창업할 생각을 해 보라는 겁니다. 여러분 세대는 그 편이 ROI
(투자자본수익률)가 더 높아요.”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