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자회사 매각 18개월의 기록

▲ KDB산업은행이 지난해 132개의 비금융자회사 중 96개를 매각했다.[사진=뉴시스]
산업은행이 비非금융자회사 매각을 발표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132개의 매각 회사 중 지난해 96개, 전체의 72.7%를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속 있는 매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91개의 기업이 중소ㆍ벤처기업인데다 헐값 매각도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산업은행의 자회사 매각 성적표를 살펴봤다.

“산업은행의 비非금융자회사 132개를 2018년까지 매각하겠다.” 2015년 10월 정부가 ‘기업은행ㆍ산업은행 역할 강화방안’을 통해 밝힌 산업은행의 쇄신안이다. 당시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의 ‘관리 부실’ 논란을 겪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이 3조원대 손실 가능성을 알고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 분식회계 논란의 불똥은 자연스럽게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으로 튀었다.

산업은행의 자회사 관리부실, 산피아(산업은행+마피아), 낙하산 논란 등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2000~2015년 임명된 30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이 넘는 18명이 산업은행과 정치권 출신 인사로 밝혀졌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자 비금융계열사 매각이라는 채찍을 내놨다. 산업은행의 방만한 경영이 계속되는 사이 본업과 관계없는 130여개의 자회사를 보유한 ‘부실 공룡’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매각 기회를 놓치거나 산업은행의 전문성 부족으로 다시 부실에 빠진 비금융 자회사를 2018년까지 모두 매각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산업은행의 자회사를 매각해 정책자금이 원활히 순환하는 정책금융의 본래 기능을 되찾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 목표로 삼은 매각기업 수는 46곳, 매각 대상은 투자 목적이 달성된 중소ㆍ벤처기업 98곳(지분 15% 이상)과 출자전환 방식으로 최대주주가 된 구조조정 기업 34곳(지분 5% 이상) 등 132개 기업이었다.

산업은행 책임론에 비금융계열사 매각

산업은행은 자회사 매각을 위해 ‘기업 인수 후 매각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기본 방침을 ‘신속매각ㆍ시장가치 매각’ 원칙으로 변경했다. 제값을 받는 것보다 스피드 있는 매각에 무게를 둔 셈이다. 자회사 매각 발표 1년6개월이 흐른 산업은행의 성적표는 어떨까. 숫자로 본 성적은 훌륭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96개의 비금융자회사를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매각 목표치인 46개의 두배를 뛰어넘은 실적이다.

▲ KDB산업은행이 매각 속도에만 집중해 헐값 매각에 나서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실 산업은행은 자회사 매각에 어려움을 겪었다. 매각 대상 기업의 대부분이 중소ㆍ벤처기업인데다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실적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까지 매각한 자회사는 벤처기업 7곳을 포함한 9곳에 불과했다. 이런 분위기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10월 중소ㆍ벤처기업 79곳의 지분을 패키지로 묶어서 팔기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매각 실적에 치중해 지원이 필요한 중소ㆍ벤처 기업을 무리하게 매각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각 대상 중소ㆍ벤처 81개 중 72.8%에 달하는 59개 기업이 매출액 10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었다. 주주 구성에서 산업은행이 빠지면 투자를 유치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산업은행이 앞장서서 ‘비 올 때 우산 빼앗은 꼴’이 됐다는 얘기다.

헐값 매각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이 패키지로 매각한 중소ㆍ벤처기업 79곳의 장부가격은 약 710억원이다. 흥미로운 점은 패키지 매각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4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펀드 모집에 나섰다는 점에서 300억~4000억원 사이에 매각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400억원의 펀드 중 지분 인수자금을 포함한 각종 비용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며 “결국 장부가 710억원의 절반 수준에 매각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매각이라면 장부가 훨씬 못 미치는 거래는 중단됐을 것”이라며 “자회사 매각에 나선 산업은행의 절심함을 엿볼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매각된 5곳의 회사도 헐값에 팔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동양물산에 매각된 국제종합기계는 639억원을 빌려주고 출자전환으로 받은 주식을 165억원에 팔아 474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9월 290억원에 경영권을 넘긴 오성엘에스티도 헐값 매각 논란에 시달렸다. 주당 1500원 가격에 출자전환한 이 회사를 주당 500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인수 2년 만에 67%에 손실을 보고 매각한 격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지난 6월 오성엘에스티의 매각에 실패했다”며 “산은이 또 한번의 매각 실패를 피하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매각을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출자전환 기업 중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많아 제값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시장가치 매각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매각 속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남은 출자회사의 매각도 문제다.

제값보다 빠른 매각이 우선

더 큰 문제는 올해다. 지난해는 중소ㆍ벤처기업 패키지 매각으로 목표량을 채웠다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간접투자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는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각 실패 이후 재매각 시점만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세번째 매각에 실패한 KDB생명은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M&A 업계 관계자는 “출자전환 기업이 10년 이상 산업은행 아래 있으면서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주인 없는 기업이 돼버렸다”며 “대우조선의 경영 정상화 실패가 다른 기업의 매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아무리 장부가가 아닌 시장가치대로 매각한다고 해도 인수자가 있어야 매각이 가능한 것”이라며 “최근 사모투자펀드(PEF)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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