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

황영기(65)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한국 경제가 변곡점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과거 패스트 팔로워로서 질주했다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지만 더 이상 과거의 패턴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팩트입니다.”

▲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찍이 노조를 해산하든지 임금을 줄였어야 합니다. 좋은 시절 호황만 믿고 저가 수주로 버틴 경영진과 이를 방임한 산업은행 책임이 커요.”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그 바람에 시장에 그래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고 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줘야죠. 회사의 회생 문제는 그러나 별개입니다. 문제를 뒤섞어 비빔밥으로 만들면 안 돼요.

✚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내다보나요?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과거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질주했다면 가보지 않은 길에 접어들었어요. 로봇, 4차 산업혁명, 서비스 산업 등이 새 키워드죠. 새로운 시대 정신과 국가 비전이 요구되는데 우리는 과거 성공 모델에 집착해 아무런 대비도 못했습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과거의 패턴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팩트입니다.” 

우려스러운 건 지난 30~40년 간 우리가 이룬 작은 성공이 강고한 기득권이 됐다는 거예요. 정치인ㆍ기업인은 물론 노동조합ㆍ시민단체ㆍ교사단체ㆍ대학 모두 기득권에 취해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사회가 하향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해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성공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가 왕성한 국민이라 국가ㆍ사회 리더십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견인하면 새 길이 열릴 거예요.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7대 3으로 비관적입니다.” 

✚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 어떤 주문을 하고 싶습니까?
“개헌 작업에 빨리 들어가야 합니다. 최우선의 어젠다는 국가 지배구조를 제대로 고치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권력구조와 더불어, 지역 대표를 뽑는 제도로 변질된 국회의원 소선거제를 손봐야 돼요. 국가 거버넌스 문제에 비하면 경제•외교ㆍ남북관계의 난제는 일시적인 거라고 할 수 있어요. 1~2년 걸리더라도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 체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노동 개혁을 해야 합니다. 대기업 노조를 비롯해 강성 노조의 기득권을 없애 경영의 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산업의 장기적 발전은 고사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할 길도 없어요.” 

지금 기업주가 이익을 극대화하려 비정규직 제도를 활용하는 게 아닙니다. 정규직 곧 노조에 힘으로 밀려 기업이 생존하느라 비정규직을 쓰는 거예요. 재벌 및 오너 문제가 심대하지만 대기업 강성 노조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물론 재벌의 불법 상속, 일감 몰아주기를 막아야 하고 사실 불법 증여ㆍ횡령ㆍ배임 등은 막을 법도 있어요. 반면 노조는 제도적으로 과잉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일부 대기업 강성 노조가 약해지면 전원 비정규직이자 사실상 정규직인 직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할 수 있어요.”

✚ 논란이 따를 수 있는 주장이군요.
“지속적인 급여 인상과 고용 안정성은 현실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 회사가 지금 없는 건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30년 후엔 시장의 응징으로 다 없어질 거로 저는 확신합니다. 고용 안정성은 노동자 가족이 걸린 문제이자 세대의 문제입니다. 고용 환경이 바뀌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노후화하면 임금 하락을 감수하고 다시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야죠.”    

✚ 이런 타협안을 과연 기업이 받아들일까요?
“기업은 그럴 용의가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해요. 사회가 이런 차별을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대기업 강성 노조의 기득권을 해체해야 합니다.” 그는 강성 노조의 힘이 막강한 회사의 제품과 주식을 일절 사지 않는다고 했다. 일개 소비자 및 투자자로서의 나름의 응징이라고 말했다.
“저 같은 소비자가 늘어나 100만, 1000만명이 되면 해당 기업은 존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 그런 활동을 하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극우이거나 극단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정제된 논리와 행동력을 갖춘 우익 시민단체가 나와야 하는데 쉽지 않겠죠.”

✚ 박근혜 정부가 국가 개조와 4대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래저래 개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국정 개혁,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나요?
“노동 개혁으로 노조가 기득권을 잃는 것을 보면 다른 기득 단체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기득권을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동 개혁만 성공하면 다른 개혁들도 기대해 볼 만해요.”

✚ 새 정부가 이를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통성 있는 정부로서 힘이 있을 때 해야 돼요. 국민에게 호소해 정부가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급여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경영진에게 맡기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합니다. 고용의 안정성은 굉장히 중요해요. 시장 상황과 회사 형편에 따라 월급 액수가 달라지더라도 회사와 공생하고 오래 다녀야죠. 잘나간다는 현대차도 해외 생산으로 살아남은 거예요. 청년들에게 ‘현대차 들어가 월급의 변동은 있겠지만 65세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길과 노조 덕에 월급은 꾸준히 오르겠지만 그러다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 길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이 사회적 합의를 대통령이 주도해 이뤄야 합니다.”

✚ 국내 자본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요?
“한국의 경제 상황에 달렸지만 그동안 쌓은 실력으로 3~10년은 괜찮을 거예요. 자본시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기업 지배구조도 투명해졌죠. 모럴 해저드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연구개발(R&D) 능력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기업, 배당 많이 하는 회사 주식은 은행 예금보다 나아요.” 

✚ 조선 등 한때 성장의 주역이었던 산업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진해운ㆍ대우조선 등 대기업도 시장에서 처분해야 합니다. 고용승계도 인수 기업이 알아서 하게 두고 실업자만 정부가 책임져야 합니다.”
▲ 황영기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헐값 매각, 국부 유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요?
“정책하는 사람은 언론이나 논객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 4차 산업혁명이 금융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보나요?
“단적으로 제조 공장이야 자동화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대면 금융거래의 활성화는 차원이 달라요. 한마디로 금융 시장에 대한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은 더 크고 더 빨리 올 겁니다.”

✚ 역대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법인세 세율 문제는 어떻게 보나요?
“국가 간 법인세 세율 내리기 경쟁은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는 글로벌하게 통일하고 세금은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국가에 내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국가의 책무입니다. 생산성 경쟁을 하지 않고 국채를 발행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후손에 대한 반역이에요.”

✚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주겠습니까?
“10년 후, 30년 후 세상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스테이 플렉서블’, 유연해야 합니다. 인문학적ㆍ철학적 성찰과 사색의 능력이 필요한 까닭이죠. 독서는 기본이고요. 직장에 들어갈 게 아니라, 부가가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직장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