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지의 비극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A씨는 차를 몰고 시청을 들렀다. 볼일을 보고 나와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생수를 마셨다. 차는 공원 주차장에 두고 지하철로 귀가한다. 이때 A씨가 밟은 땅의 소유주는 ‘나라’다. 여기까진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혹시 이건 아는가. 국유지가 어떻게 팔리고,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말이다. 더스쿠프가 국유지의 비극을 취재했다.

▲ 국유지는 국가가 소유한 땅이라는 의미를 넘어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모처럼 활기가 도는 시장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장기를 발휘한 작품을 가판대에 깔았다. 악기를 다루는 이들은 자유롭게 공연을 펼쳤다. 어떤 사람들은 가진 재능을 나누겠다며 강의실을 만들었다. 먹거리, 볼거리도 풍성했다. 경의선숲길 가운데 생긴 시장인 ‘늘장’이다. 마치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 공유지公有地처럼 쓰였다.

실제로 이 시장이 뿌리를 내린 땅은 철도시설공단이 소유한 국유지다. 하지만 활기가 넘치던 시장은 문을 닫았다. 공단이 이 부지를 대기업에 장기 사용권 넘겨주면서다. 시민들의 장터를 뒤로 하고 들어서는 건 영화관, 수영장 등이 포함된 빌딩이다.

# KT와 KT&G는 부업으로 부동산 사업을 한다. 보유하고 있는 땅이 꽤 된다. 돈벌이도 쏠쏠하다. 이 두 기업은 공통점이 또 있다. 국가기관에서 공기업으로 전환되고 다시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국가기관과 공기업으로 있던 시절 도시 노른자위 곳곳에 땅을 확보했다. 물론 국민들의 세금으로 말이다.

당신은 국유지(국가땅)의 규모를 알고 있는가. 또 국유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고 있는가. 국유지는 생각보다 넓다. 우리 전체 국토의 20%가량을 차지한다. 기획재정부의 통계를 보자. 2015년 국유재산관리운용총보고서를 보면 국유지 규모는 2만4718㎢. 여의도 면적의 8523배, 서울시 면적의 40배 규모다.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448조5830억원에 달한다. 2010년 1만6660㎢에서 48%나 증가했다.

국유지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규모만큼이나 크다. 일단 차와 사람이 온전히 다닐 수 있게 한다. 도로가 국유지다. 지하철, 철도 부지도 마찬가지다. 산의 녹지를 넓히고 댐을 만들어 재해를 방지하기도 한다. 공원을 만들어 휴식을 주기도 한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부대의 땅도 여기에 속한다. ‘토지 은행’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가 낳은 폐해로 장기적인 안목의 도시개발 계획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때 비축해둔 국유지 활용은 필수다.

부동산 정책을 펼 때 근간이 되는 자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부동산경기가 과열돼 주택가격이 급등하거나 서민층의 주거비용이 급격히 상승할 경우다. 정부는 국유지를 활용해 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공급해 민간 주택시장의 수요를 줄여 시장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때 국유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면 경기부양과 함께 저소득층에 저렴한 주택 공급과 일자리 제공 등의 복지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국유지는 국고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한다. 2015년 한해 정부는 2조4451억원 규모의 공유지를 팔아 국고에 보탰다.

문제는 국유지를 효율적으로 다루고 있느냐다. 정기황 도시문화연구소 소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국유지를 다루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국민 스스로가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다. 국유지를 소유한 정부와 단체가 개발을 통한 이익 창출에만 매달리는 이유다. 정부는 매년 국유지를 매각하고 있지만 그 이유와 목적이 공공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유지는 땅을 소유한 국가기관의 재정수입을 위한 도구다.”

정 소장은 외국 사례를 들어 국유지 매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시정부가 전체 면적의 약 70%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택지를 민간에 거의 분양하지 않는다. 시정부 소유의 토지를 지속적으로 비축하면서 토지에 대한 사용권만 양도하고 토지임대료를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 민간으로 넘어간 땅은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데다 시가 미래를 대비한 장기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개발 이익에만 몰두하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유지가 누구에게 어떻게 매각됐는지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 매각을 주도한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발표하면 그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후유증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의선숲길의 명물 시장이던 ‘늘장’은 문을 닫았다. KT와 KT&G 등 민영화된 기업은 과거 국민들의 혈세로 산 땅을 가지고 수익 사업에 나서고 있다. 국민이 일군 땅의 가치를 특정집단이 가로채는 샘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시장의 왜곡이 심한 국가는 국유지 비율을 높여 주거 복지를 강화하고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당장의 재정 마련을 이유로 국유지 개발을 민간에만 맡기면 더 큰 손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땅은 한 세대만 사용하고 폐기되는 단기상품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생존의 터전이라는 걸 국가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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