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사업 드라마 ‘비하인드 스토리’
70년 사업 드라마 ‘비하인드 스토리’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246
  • 승인 2017.07.05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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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 후퇴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2017년 6월 24일. 이날은 한ㆍ일 재계의 기린아 신격호(95) 롯데 총괄회장이 70년 사업무대를 접은 날이다. 70년간 주인공을 맡아 동분서주했던 그는 이날 무대가 막을 내리자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정황으로 보아 스스로 퇴진을 결정했다기보다 왕자의 난 끝에 어쩔 수 없는 길을 간 것 같다. 신격호 70년 사업 드라마를 지켜본 이들은 왠지 좀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창업 70년 만에 일선에서 물러난 신격호 회장의 공과는 더욱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죽음이 뭐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이 나의 서랍을 치워주는 것”이라고 가볍게 답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신격호 회장의 2선 후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70년 동안 목숨과도 같이 여겼던 사업의 끈을 놓으면서 그는 가타부타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의해 조용히 사업 무대에서의 퇴장 명령을 받은 것으로 비쳤다. 롯데홀딩스는 일본과 한국의 수많은 롯데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정점에 있는 회사다.

그는 차남 신동빈(62) 롯데 회장 등 다른 주주들의 손에 의해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배제’돼 하루아침에 아무 실권도 책임도 없는 사업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궁중 드라마에서 나오는 친위쿠데타의 최종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언론들은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표현보다 “주주총회에 의해 이사직에서 배제됐다”는 표현에 더 방점을 찍었다.

그의 이사직 배제 사유는 ‘고령’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 증상이 있는데다 70년 동안 사업을 했으니 그도 이제 쉴 때가 되긴 됐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했다면 그가 이런 결론을 쉽사리 받아들였을까?

이제 ‘70년 신격호 롯데 시대’가 저물고 ‘차남 신동빈 뉴 롯데 체제’가 더욱 공고해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동생 신 회장과 치열한 경영권 승계 다툼을 벌여왔던 장남 신동주(63)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앞으로도 전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승리는 이미 신동빈 회장 쪽으로 넘어간 것 같다. ‘신동빈의 뉴 롯데’가 축성되고 있고, 롯데 창업자 신격호에 대한 새로운 평가 작업도 시작됐다.

신격호는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울산에서 5남5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20대 초반(1942년)에 청운의 뜻을 품고 맨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 와세다대 화학공학과를 어렵사리 다닌 그는 전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린다. 일본에서 종합제과기업을 일군 그는 한ㆍ일 수교 후 한국 사업 확대에 나선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부응하며 제과ㆍ호텔ㆍ백화점 등 굴지의 유통기업군을 일궈낸다. 이후 건설ㆍ석유화학 등으로도 진출해 마침내 한국 재계 5위 기업군을 축성한다. 마침내 30년 꿈이었던 123층짜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완공시킨다. 영욕으로 점철됐던 기업인 신격호 퇴장의 의미를 주요 포인트별로 정리해 본다.

창업 1세대 중 마지막 퇴장 = 그는 한국 재계 창업 1세대 중 사실상 마지막으로 퇴장한 인물이다. 물론 한국 기업계 전체를 살펴보면 아직도 창업자가 사업을 하는 곳이 더러 있다. 30대 그룹(2017년 일반기업 기준) 중에서는 사업 역사가 비교적 짧은 부영(16위), 미래에셋(21위), 하림(30위) 정도다. 한때 재계 상위였던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도 창업 1세대지만 지금은 30위 그룹 밖으로 밀려났다.

따라서 한국 재계의 상위그룹에 속한 창업 1세대는 이번 신 회장을 끝으로 모두 작고하거나 퇴장한 셈이다.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대우 김우중 등과 함께 롯데 신격호는 현대 한국 재계를 대표해온 불세출의 기업인이었다.

‘유통 거인’으로 재계 5위 축성 = 그에게도 공과功過는 있지만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국의 산업 근대화 과정에 참여해 큰 족적을 남겼다. 기발한 마케팅 능력과 과감한 투자, 앞을 내다보는 사업 안목과 결단력, 치밀한 사업전개 능력 등으로 특히 유통 사업에 솜씨를 보이며 신격호 아성을 일궈냈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한 이래 올 6월 24일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한ㆍ일 양국을 오가며 사업 일선을 지켰다. 수많은 기업을 창업해 일자리를 제공했고 경제발전과 국민생활 향상에 기여했다. 일본에서 먼저 종합제과기업을 일군 그는 고국인 한국에서도 재계 5위 기업군을 축성했다.

불투명한 후계 구도, 뼈아픈 실책 = 막판에 후계 구도를 제대로 정리 못한 점은 그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평소 그는 견고한 롯데 아성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주城主였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신의 위치가 두고두고 갈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었다. 자신에게 치매 증상이 찾아오기 전에 후계 구도를 명확히 했더라면 하는 대목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세월은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 아닌가.

롯데가家 특유의 비밀주의로 인해 내밀한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치매 증상이 막판 실책에 큰 변수가 된 것 같다. 지난해 여름 왕자의 난이 한창일 때 그가 3~4년 전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2세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6월 초 대법원이 신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 지정을 확정함으로써 그의 치매 증상은 더욱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대한해협 경영자’ 별칭 얻어 =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에 나서 ‘대한해협 경영자’란 별칭을 얻었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렀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후 한국에서 다시 5대 그룹을 축성한 솜씨는 국내 어느 기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재일 교포로 사업을 일으키고 현지에서 일본 여성과 두번째 혼인도 했다. 한국 체류가 많아지면서 미스 롯데 출신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신격호가 산업 발전 속도가 빨랐던 일본에서 쌓은 사업 노하우를 순차적으로 한국에 이식해 유통업 등을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고 평가한다.

탁월한 안목과 끈질긴 집념 = 그는 탁월한 안목과 끈질긴 집념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기업인이다. 대표적인 게 30년 숙원 사업이었던 잠실 롯데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 건축이다. 그는 이미 1980년대 후반에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순 없다”며 고국 서울에 랜드마크가 될 만한 마천루를 짓겠다고 나섰다.

부지 매입과 군용 항공기 고도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숱한 특혜 시비에 시달렸고 건설비도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올 4월에 건물을 준공시켰다.

지금도 “껌이라면 역시~롯데껌!”이란 광고 카피가 생각날 정도로 그의 마케팅 능력은 뛰어나다. 문학도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갔던 한 청년이 껌이란 하잘것없어 보이는 상품에서 시작해 70년 만에 한ㆍ일 롯데라는 ‘신격호 아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를 아들들에게 맡긴 채 2선 후퇴한 그에 대한 평가는 향후 더욱 정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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